매일신문

좌익세력에 일가족 8명 몰살 "70년 지나도 전쟁 상흔 여전"

'고령 적대세력 사건' 유족 정상 씨
1950년 '경북 고령 적대세력 사건', 후손들에게도 '현재진행형'인 전쟁 상처
극단 이념 갈등이 낳은 비극…시신도 겨우 찾아 합동 장례
진상규명 요청에도 조치 없어 "억울한 죽음 반드시 풀어줄 것"

1950년 경북 고령군 우곡면에서 좌익세력에게 일가족 8명이 몰살당한 '경북 고령 적대세력 사건'의 희생자 유족인 정상 씨가 23일 매일신문 1961년 8월 5일에 보도된 '분사한 여덟무덤…한청의 한집안 세차례에 학살'기사를 가리키며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성현 기자
1950년 경북 고령군 우곡면에서 좌익세력에게 일가족 8명이 몰살당한 '경북 고령 적대세력 사건'의 희생자 유족인 정상 씨가 23일 매일신문 1961년 8월 5일에 보도된 '분사한 여덟무덤…한청의 한집안 세차례에 학살'기사를 가리키며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성현 기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경북 고령에서 좌익세력에게 일가족 8명이 몰살당한 사건(매일신문 1961년 8월 5일 보도)의 유족이 정부에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촉구하고 나섰다. 당시 우익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인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좌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발굴 및 조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이념 갈등 탓에 일가족 8명 목숨 잃어

23일 희생자 유족 측과 과거 매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1950년 8월 7일 경북 고령군 우곡면 사전동 96번지 뒷산에서는 '인민재판' 뒤 좌익세력이 정태문(당시 42세) 씨의 어머니와 정 씨의 형제 4명을 죽창으로 마구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보름쯤 뒤에는 당시 10살이었던 정 씨의 막내 동생과 아버지마저 마을 인근으로 끌고 가 사살했다.

정태문 씨는 이보다 앞선 1949년 3월 15일 집에서 2㎞ 떨어진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 중 살아남은 이들은 정 씨 형제들의 아내와 그 자식들 뿐이었다.

이처럼 한 가족이 몰살된 배경에는 당시 극에 달했던 이념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집의 맏이인 정태문 씨를 필두로 형제들이 모두 우익단체였던 대한청년단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족에 따르면 정태문 씨는 만주군관학교 1기생으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청년단장 간부로 활동하며 고령군 우곡면 향토방위에 힘쓴 걸로 알려져 있다.

일가족이 몰살된 후 남은 이들의 삶은 처참했다. 1961년 8월 5일 매일신문 〈분사한 여덟무덤…한청의 한집안 세차례에 학살〉 보도에 따르면 정태문 씨의 제수 차점순 씨는 "학살당한 당시에는 울음은 고사하고 시체조차 찾을 길이 없이 피눈물로 넋빠진 나날을 보내오다 9·28 서울 수복 후에 국군과 경찰이 시체를 찾아 면장으로 겨우 합동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보도에 11살로 등장했던 차 씨의 둘째아들 정상(72) 씨는 최근 매일신문 취재진을 만나 "나도 태어나기 전 얘기라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면서도 "아버지의 부재로 가족들의 삶은 너무 힘겨웠다. 국민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생업에 뛰어들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1961년 8월 5일 매일신문 〈분사한 여덟무덤…한청의 한집안 세차례에 학살〉 기사 사본
1961년 8월 5일 매일신문 〈분사한 여덟무덤…한청의 한집안 세차례에 학살〉 기사 사본

◆국가 외면 탓에 유족 상처는 계속돼

학살이 일어난 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이 더뎌서다.

어느덧 70대 노인이 된 정태문 씨 조카 정상 씨가 지난 2022년부터 꾸준히 국가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당국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정상 씨는 "2021년에 종손이신 사촌형님이 돌아가신 뒤에 유품정리를 하다 1967년에 내무부 장관에게 보냈다가 되돌아온 걸로 보이는 청원서를 발견했다"며 "청원서에는 고령경찰서장 명의의 전사확인서와 가족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마땅한 조치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이 문서를 발견한 뒤부터 여생을 바쳐서라도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2년 넘게 여러 국가기관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속 시원하게 조사 결과가 나온 게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이 사건은 진화위와 국방부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심의위원회에 각각 접수돼있다. 진화위의 경우 지난 2022년 1월 조사개시결정을 내린 뒤 그해 10월 정상 씨를 통해 신청인 조사를 간신히 마쳤지만 국방부의 경우 2년째 아직 조사 날짜도 제대로 못 잡고 있다. 진화위의 조사 결과 역시 언제 나올지 불투명하다.

정상 씨는 "큰아버지와 아버지 등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게 내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도 없고, 오로지 내가 나서야만 하는 일"이라며 "모진 고생을 한 희생자 유족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화위 관계자는 "사건이 접수되면 신청인 조사 이후 참고인 조사, 기록 조사 등을 거친다. 고령 학살 사건을 포함해 경북지역에 한국전쟁 당시 사건이 90건 정도 되는데, 지난주에 신청인 조사를 모두 마쳤다"며 "순차적으로 최선을 다해 조사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심의 대상과 관련한 자료가 국방부에 있을 경우 조사가 수월하게 진행되지만, 정태문 씨 등은 관련 자료가 없어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추후 조사관이 필요시 신청인의 자택을 방문하는 등 최대한 서둘러 관련 조사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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