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공천에서 乙인 영남좌도(嶺南左道) TK 정치인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지역 인재 자랑은 애향심과 지역 자긍심에서 자주 거론된다. 영남의 인재 자랑은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 인재'(朝鮮人才半在嶺南)라는 이중환의 택리지를 많이 인용한다. 현대에 들어서 조선시대 영남인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의 범주로 봐도 인재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까지 역대 대통령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대기업을 봐도 삼성, LG, GS, 롯데, 효성 등 주요 대기업의 창업자도 영남이다.

현재 경상도는 5개 광역 시·도이지만, 1894년 갑오개혁으로 북도와 남도로 나누어졌다. 반면 조선시대에 경상도는 하나의 행정구역이었지만 군영 체계로 좌도와 우도로 나누었다. 한양에서 봤을 때 낙동강 왼쪽(안동, 대구, 경주 등)이 좌도, 오른쪽(상주, 성주, 합천, 밀양, 진주 등)이 우도였다. 즉 영남의 경상 좌도와 우도는 낙동강이 경계였다.

낙동강은 지리적 경계선만이 아니다. 인문학적으로 본다면 조선 영남성리학의 2종주가 낙동강을 경계로 좌도에는 안동의 퇴계 이황이, 우도에는 합천의 남명 조식이 있었다. 또한 두 학파를 함께 발전시킨 한강 정구의 성주가 낙동강 변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낙동강은 해양 문화를 영남 내륙으로까지 연결시켰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해양 문화였던 가야는 낙동강을 거슬러 김해뿐만 아니라 고령, 성주, 상주까지 그 세력이 이어졌다. 이와 같이 낙동강은 영남에서 인문 지리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강이다.

그러한 연유였을까? 낙동강을 기준으로 영남 좌・우는 역사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좌도는 경주・안동・대구를 중심으로 신라의 내륙 문화가, 우도는 신라에 멸망했지만 가야의 해양 문화가 이어졌다. 내륙인 좌도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공동체 문화인 반면, 우도는 좀 더 개방적이다. 인문학적으로도 퇴계학파의 완전성이 강조된 좌도에서는 학자를 많이 배출했고, 당파는 남인계를 형성한 반면 우도는 남명학파의 실천 중시 영향으로 경세가를 많이 배출했고 북인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현대사 인물에서도 영남 좌・우도는 숫자나 성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앞서 언급한 역대 대통령 중에서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문재인은 우도이고 노태우만 좌도다. 반면 소론계 고령박씨의 박정희와 박근혜는 좌・우의 인문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좌・우도로 분류하기 힘들다. 이명박은 해양 문화인 일본 출신으로 기질상 우도다. 기업가를 보면 좌・우도 성향의 삼성을 제외하면 모두 우도이다. 이런 구분으로 보면 국가와 기업의 리더는 우도가 훨씬 많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영남 좌도가 대부분인 TK(대구・경북) 정치인 중에는 우도가 대부분인 PK(부산・울산・경남)와 달리 정치적 리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 3, 4선 국회의원도 중앙 정치에서 존재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총선만 되면 지역 국회의원들은 공천에서 갑(甲)이 되기보다는 을(乙)의 처지가 된다.

사실 TK는 박정희 이후 보수 내 공화주의 노선이다. 아주 쉽게 표현하면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헌신성과 국민의 책임감을 중시한다. 반면 PK는 김영삼 이후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노선에 가깝다. 이러한 노선은 이후 친박 vs 친이 대결로 이어져 보수 내에서 당내 당이라 표현될 정도로 그 차이가 컸고, 친박・친이계의 경쟁은 정책적 노선과 정치적 의리의 문제였다.

지금의 TK 정치인들은 공화주의인지 자유주의인지 정책적 노선을 알 수가 없다. 정책적 노선을 고민하고, 정치적 세를 만들고, 국민에게 비전을 보여 주어야 정치적 리더가 된다. 아니면 허주 김윤환같이 정치력이라도 있으면 실세라도 된다. 공화・자유주의를 발전시키거나 두 노선을 통합시킬 정치 이론가도 없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TK 정치인들은 을의 처지가 된다. 리더가 못 된 정치인은 생존을 위해 실세에 줄을 서기도 한다. 친박에서 친이, 이제는 친윤으로. 이런 을의 정치가 계속되면 TK에서 정치적 리더는 더더욱 나오기 힘든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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