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팔공산은 천상의 화원] 꽃 가득한 4월의 팔공산

앞다투어 핀 꽃망울 4월 사방이 꽃 잔치다

귀룽나무
귀룽나무

늦겨울이 따뜻하다가, 초봄은 쌀쌀하다가, 또 4월의 봄은 기온이 불쑥 오른 나날들이 자주 있다. 초봄의 찬기운에 꽃이 잠시 웅크렸다가 풀린 날씨 덕에 여기저기 꽃들이 마구 피어난다. 꽃을 맞이할 마음은 아직 준비 중인데 앞다투어 피는 꽃들이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4월은 사방이 꽃잔치다. 눈길 두는데 마다 꽃이 피지 않은 곳이 없고 사람들은 꽃축제를 하며 꽃이 만발한 곳으로 모여든다. 벚꽃축제가 끝나가고 진달래축제가 이어진다. 하얗던 마음들이 꽃분홍색으로 아롱지는 계절이 딱 이맘때다. 팔공산이라고 다를 리 없다.

숲이 깊고 넓은 팔공산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산다. 그들이 가장 꽃피우기 좋은 계절이 요즘이기도 하다. 숲 바닥에 하얀 남산제비꽃이 향기를 내뿜으며 피고, 잎을 돌돌 말아 고깔 모양을 한 고깔제비꽃의 분홍색 꽃이 어느 나무 아래에 피고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치고 지나갈 법한 다양한 괭이눈 식구들이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계곡 가장자리에 피어나고, 가산바위 틈새에 자라는 키작은 나무 쇠물푸레는 꽃눈을 틔우느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급해지고 분주해진다. 어떤 꽃을 먼저 만나야 하나. 넓고 깊은 팔공산의 어느 자락, 어떤 골짜기에 꽃이 먼저 피려나. 그러나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 어느 산자락이든 어느 골짜기든 꽃이 피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니. 그냥 망설이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등산화를 단단히 신고, 꽃 못지않게 고운 마음에 설렘을 가득 안고 숲으로 걸어 들어가면 무조건 성공이다. 눈앞에 꽃이 가득한 그런 계절이 바로 4월이고 그런 곳이 팔공산국립공원의 숲이다.

노랑무늬붓꽃
노랑무늬붓꽃

◆한국특산식물, 노랑무늬붓꽃

우리나라에 붓꽃 종류가 참 많다. 흔히들 아이리스라고 부르는 꽃이 다 붓꽃 종류이다. 아이리스라고 하면 왠지 꽃집이나 화단에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우리나라 숲속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봄에 피는 키작은 붓꽃류 중에 노랑무늬붓꽃은 특히 귀한 꽃이다. 드물게 자라서라기보다 한국특산식물이기 때문에 귀한 꽃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숲에서 자생하는 노랑무늬붓꽃을 볼 수 있다.

노랑무늬붓꽃
노랑무늬붓꽃

햇볕을 무척 좋아해서 주로 능선부에 모여 자라는 경우가 많다. 숲속에도 자라긴 하지만 능선부에 더 많은 무리를 이룬다. 그래서 팔공산에서도 가산산성 주변에 더욱 기세가 좋은 노랑무늬붓꽃이 살고 있다. 하얀 꽃 속에 노란 무늬를 가진 붓꽃이라해서 노랑무늬붓꽃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칼날같은 매끈하고 날카로운 잎이 무성하고 그 사이에서 꽃대가 올라오는데, 하나의 꽃대에 두 개의 꽃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는 한국특산식물이지만 늘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미치광이풀
미치광이풀

◆이름도 괴기스러운 미치광이풀

미치광이풀, 이름만으로도 예쁨과는 거리가 멀다. 이 식물은 먹으면 미쳐 날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독성이 강하다. 환영을 보거나 환청이 들리거나 하는 환각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먹어서는 안 되는 식물 중에 하나다. 그러나 그 독성이 약으로도 쓰인다. 식물에서 특정 성분을 추출하여 약으로 개발한 경우가 많은데 미치광이풀도 그중에 하나다.

미치광이풀
미치광이풀

미치광이풀은 이른 봄 싹이 날 때도 검게 올라온다. 햇빛을 만나면 빠른 속도로 초록색으로 변하지만 어린싹을 숲에서 만나면 깜짝 놀랄만하다. 초록색으로 변하는 와중에 숨겨져 있던 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꽃을 피운다. 꽃 색도 어린싹과 비슷하게 검은 자주색이다. 솔직히 다른 봄꽃에 비해 그 자태가 화사하지 못하다. 그래도 봄이면 만나고 싶어지는 식물이다. 팔공산 진불암으로 올라가는 숲에 미치광이풀이 드문드문 자란다. 숲 바닥의 낙엽 사이로 검은 두건을 쓴 얼굴을 불쑥 내밀고 있을 것이다.

깽깽이풀
깽깽이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깽깽이풀

깽깽이풀은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봄꽃이다. 땅에서 잎줄기와 꽃줄기가 따로 올라오는데 어린싹은 자주색이다. 초록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밝은 자주빛의 싹이 땅에서 얌전하게 올라온다. 붉은 잎은 두 손을 가슴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반으로 접혀서 합장을 하고 태어난다. 이후 꽃줄기가 잎보다 서둘러 자라서 꽃을 피운다. 꽃과 함께 합장한 손도 펼쳐지고 점점 푸른색이 나타난다.

깽깽이풀
깽깽이풀

화사한 꽃분홍색이라 해야 할지, 밝고 맑은 자주색이라 해야 할지 오묘한 색의 꽃은 사람의 마을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높은 산 능선이나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아닌 비교적 가까운 산언저리에서 자라지만 쉽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안달나게 하는 꽃이다. 꽃은 피고 나서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순식간에 져버린다. 사람의 마음을 끌만 한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밀당을 잘하는 깽깽이풀은 봄마다 기도하며 태어난다. 무엇이 그렇게 간절하길래 늘 두손 모아 기도하는 것일까.

선괭이눈
선괭이눈

◆물을 머금은 연둣빛, 선괭이눈

괭이눈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은 우리나라에 여러 종이 있다. 그중에서도 선괭이눈은 좀 특별하다. 다른 종류들보다 특히 더 맑은 기운을 가졌기 때문이다. 차갑고 깨끗한 산속 개울물 가까이에 자라는 선괭이눈은 물을 잔뜩 머금고 있다. 상처가 나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것처럼 말이다.

선괭이눈
선괭이눈

하늘을 향해 자잘한 꽃들이 모여있고, 그 아래로 총포들이 꽃을 떠받친 모습이 참 정겹다. 총포는 꽃 가까이 갈수록 꽃 색과 비슷해지고 바깥으로 갈수록 푸른 빛이 조금 더 진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안쪽으로 밝게 그러데이션을 이루고, 꽃과 총포를 합해서 하나의 꽃인 것처럼 보인다. 연두색에다 자잘한 황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색, 그 묘한 빛깔은 감히 사람이 흉내내기 어렵다. 멀리서 봐도 작은 꽃이 눈에 들어올 정도다.

팔공산의 봄, 맑은 개울물에 손을 집어 넣었다가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랄 때, 주변에 동전보다 좀 더 크고 빛나는 푸른 꽃을 만나면 그가 바로 선괭이눈이다.

귀룽나무
귀룽나무

◆큰 나무에 흰 꽃이 주렁주렁, 귀룽나무

봄이 오면 키가 큰 나무들이 작은 나무들보다 늦게 잎을 틔우는 편이다. 작은 나무들이 먼저 꽃 피고 잎 나기를 기다렸다가 서서히 잎눈을 틔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귀룽나무는 성격이 급하다. 키 작은 나무들보다 먼저 잎을 틔워서 숲을 푸르게 만든다. 잎과 동시에 꽃대가 나오고 잎이 자라면서 꽃대도 함께 자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얀 꽃들이 대롱대롱 피기 시작한다. 수많은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서 큰 나무에 흰 꽃들이 주렁주렁 달린다. 꽃만해도 화사한데 향기까지 아주 매력적이다.

꽃을 매단 나뭇가지들은 부드럽고 유연하다. 큰 나무들 중에는 버드나무 마냥 아래로 축축 늘어진 가지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한다. 더불어 꽃도 함께 그네를 탄다. 봄의 중간 4월에 팔공산 어느 계곡 주변에서 유난히 푸르거나 하얀 구름같은 큰 나무를 만나면 가까이 가볼 필요가 있다. 한번 앞면을 트면 봄이면 봄마다 만날 날을 기다리게 되는 나무가 귀룽나무이다.

김영희 작가
김영희 작가

글 산들꽃사우회 (대표집필 김영희 작가)·사진 산들꽃사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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