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성걸 칼럼] 보수답지 못한 보수주의자에 대한 마지막 경고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제22대 총선은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다. 통곡해도 시원치 않을 국민의힘에서 21대 총선보다 5석을 더 얻었으니 그때보다는 낫지 않으냐는 한심한 소리도 들린다.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르다. 그땐 야당이었고, 코로나 시국에서 집권 여당에 대한 심판 심리가 약했었다.

지금은 집권 여당이며, 더불어민주당의 반민주적 국회 운영,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포함한 수많은 악재로 둘러싸인 민주당에 참패했다. 게다가 2심 실형까지 선고받은 조국 씨가 범죄 피의자들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들고나와 만든 비례정당에 유권자들은 무려 12석을 몰아주었다. 그런데도 최근 당선자 총회에서 서로 덕담이나 하면서 웃으며 헤어졌단다. 오히려 낙선자대회에서는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죄송하다고 사죄했는데도 말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에게 버림받았다. 많은 분석과 주장이 쏟아지고,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주장이 많다. 맞는 말이지만 표면에 나타난 대통령의 행위나 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반민주적 행태도 대통령의 오만함에 비해 그리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박용진 의원을 공천 배제하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좋게 본 사람이 있을까? 차은우보다 이재명이 더 잘생겼다는 안귀령을 묻지마 공천한 것이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나? 불법 대출로 강남의 아파트를 산 양문석 후보를 국민이 판단할 거라면서 그냥 두었는데도 당선되고, 퇴계나 고종을 변강쇠처럼 표현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위안부와 관계했을 것이라거나 김활란 초대 이화여대 총장이 학생들을 동원해 미군이나 고위 인사들에게 성매매시켰다고 주장하는 김준혁을 공천했는데도 당선되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런 허접한 인사들까지 당선되었겠는가.

만일 국민의힘이 이처럼 표면에 나타난 현상학적 이유만을 선거 패배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 짚었다. 윤석열이 없었을 때에도 국민의힘은 대패했었고, 마땅한 대선 후보조차 없어 하는 수 없이 영입한 인사가 윤석열 아니었는가. 총선에서 3연속 패배, 그것도 여당으로서 개헌선을 간신히 지킬 정도의 치명적 패배를 당했다면 그 이유는 현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높아진 근본 원인은 한마디로 '보수가 보수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노력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공동체로서 함께 잘살고자 하는 집단적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신에게 더욱 엄격한 것이 보수주의자다.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즉시 이를 고치고 바로잡으며, 불공평이나 불의를 그대로 두고 보지 않는 것이 보수주의자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그렇지 못했고 이를 준엄하게 꾸짖은 것이 이번 선거의 의미다.

이번 선거에서는 철저한 회고적 투표가 이루어졌다. 민주당의 정부심판론이 먹혀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국민이 먼저 보수답지 못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심판한 것이다. 스스로 공정과 상식, 정의와 원칙을 앞세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년간 수행한 수많은 정치적 의사결정이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이며, 정의롭고 원칙에 부합한 것이었는가를 되돌아보라. 국민의힘이 수행한 수많은 일과 의사결정이 과연 그렇게 공정과 상식, 정의에 부합했는가를 돌아보라.

21대 총선을 약 6개월 앞둔 2019년 11월, 필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 4주기 추모 행사에서 당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짧은 특강을 요청받았다. 필자는 '자유한국당은 썩은 물로 가득 차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썩은 물이 가득 찬 물통에 맑은 물 한두 바가지 붓는다고 그 물이 맑아지겠는가. 지금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면 국민은 물통 자체를 버릴 것이라고 경고의 말씀을 드린 바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국민은 국민의힘이라는 물통을 바꾸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번 총선은 보수답지 못한 국민의힘에 마지막 경고를 한 것이다. 국민의힘의 혁신은 수도권과 2040의 공정과 상식, 그리고 정의와 원칙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수도권의 승리가 없다면 이 땅의 보수주의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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