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뇌피셜의 세상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뇌피셜'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뇌피셜이란 '뇌(腦)'와 '오피셜(Official, 공식 입장)'이 조합된 신조어로, 자신의 생각을 공식적으로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행위나 그러한 주장을 의미한다. 뇌피셜에 빠지면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합리적인 의심이나 논리적 결함도 무시된다. 믿고 싶은 것이 사실로 둔갑한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청담동 바(bar)에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그리고 국내 최대 로펌 변호사 30명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는 김의겸의 '청담동 술자리' 폭로가 거짓이라는 것이 경찰 수사 결과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여전히 특정 진영에 속한 70% 이상이 사실로 믿고 있다고 한다.

검찰이 대북 송금 사건 피의자들을 검사실에 불러, 구치소에서 먹을 수 없는 연어와 회덮밥에 소주까지 곁들여 회유했다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폭로는 충격적이다 못해 검찰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폭탄이다. 검사의 폭언 한마디도 인권침해라며 고발하는 요즘, 야당 대표가 공범으로 입건된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피의자를 상대로 검찰이 연어와 소주를 제공하면서 회유를 시도한 게 사실이라면 정권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무모한 정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뇌피셜이 아닌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이화영의 주장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우선 그가 주장하는 회유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지난해 6~7월로 쌍방울의 대북 송금 대납을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직후다. 회유는 검찰이 아니라 그 진술이 알려진 직후부터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측이 한 것인지, 그 후 이 전 부지사는 기존 진술을 부인하고, 변호사 해임계를 제출하고,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는 등 총선 전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재판 지연 전략을 구사했고 성공했다.

검찰이 '연어 회유'를 시도한 게 사실이라면 이화영이 그동안 폭로하지 않고 묵혀 뒀다가 4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터뜨릴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이 전 부지사의 폭로를 민주당이 총선 호재로 적극 활용하지 않았던 점도 미스터리다.

이 대표는 이화영의 폭로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100% 사실일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가 사실이라고 믿었다면 민주당이 구호로 내건 '검찰 독재 정권'을 입증할 수 있는 초특급 호재가 될 수 있는데 총선에서 전혀 활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총선에서 거짓 선동을 할 경우 공직선거법으로 기소될 것이 뻔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이 대표뿐 아니라 민주당 총선 후보 중 누구 한 사람 총선에서 이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총선이 끝난 직후 민주당은 정치쟁점화에 나섰고, 당선된 '대장동 변호사'들을 동원해 대책 기구까지 만들어 수원지검과 수원교도소, 대검찰청까지 몰려가 국정조사를 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이화영의 주장은 장소와 시간이 거듭 번복되었고 마침내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대표 지지자들은 청담동 술자리를 사실로 믿듯이 '연어 회유'도 철석같이 믿을 것이다.

이화영의 주장에 100% 사실이라며 동조한 이 대표는 이제 100% 사실로 믿게 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200석에 육박하는 절대 의석을 가진 제1야당 대표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국정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달리 보다 신중해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대표는 이제 '아니면 말고'의 뇌피셜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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