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섣부른 정책이 부른 해외 직구 원천 차단 논란

정부의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해외 직접구매(직구) 차단' 발표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숙지지 않자 여당과 대통령실이 진화에 나섰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20일 "당정 협의 없이 설익은 정책이 발표돼 국민 우려와 혼선이 커질 경우, 당도 주저 없이 정부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낼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후 대통령실도 "국민들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면서 사전 의견 수렴과 대언론 설명 강화 등 재발 방지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16일 어린이용 34개 품목,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 등 80개 품목을 대상으로 국내 안전 인증(KC 인증)을 받지 않았다면 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발표한 내용이다. 법 개정 전까지는 관세법에 근거한 임시 조치로 계획을 시행하고, 법률 개정도 추진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상 해외 직구 차단으로 해석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소비자들이 직구를 찾는 원인이 국내 유통 구조 때문인데 엉뚱한 규제만 한다거나, 유해물질 검출 어린이용품만 규제하는 게 아니라 직구 자체를 금지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별한 하자가 없는 제품도 KC 인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직구를 할 수 없다거나 훨씬 비싼 가격에 사야 한다면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문제없이 쓰던 전기·생활용품 등의 반입 제한 가능성에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안전을 내세워 포괄적, 일방적으로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것은 무식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정부는 19일 80개 품목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80개 품목을 조사해 위해성이 확인된 특정 제품만 직구를 차단할 뿐 다른 품목은 영향이 없다고 했다. 해외 직구를 사전에 차단·금지하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다음 달에 갑자기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표현이 거칠거나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조언은 반감을 부르게 마련이다. 하물며 사적인 대화도 심사숙고해야 하는데 국민 민생과 직결된 정책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안에 따라 속전속결로 처리해 정책을 내놔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급부가 발생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은 신중해야 한다. 정부 정책 발표는 단어 선택부터 절차까지 흠결 없는 진중함이 필수다. 총리 주재 관계장관회의에서 법 개정 전 임시 조치까지 운운해 놓고 '혼란'이라는 해명은 미숙해 보인다. 섣부른 발표가 논란만 키웠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부 여당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