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삼권분립 기틀 부정하는 야당…협치 의지 있나?

서울취재본부 본부장
서울취재본부 본부장

올 초 치러진 제13회 변호사 시험에는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 사유의 헌법적 정당성에 관하여 판단하시오'라는 문제가 출제돼 눈길을 끌었다. 공법 파트에서 마땅히 출제될 만한 문제인데, 대통령 거부권(법률안 재의요구권) 행사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최근 정치 현실에 비춰볼 때 새삼 트렌디한 출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겨냥한 거대 야권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다. 무리한 입법 추진으로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놓고 '총선 민심에 반하는 대통령' 프레임을 만들어 '탄핵' '조기 퇴임' 등을 거침없이 거론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해병대원 특검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채 상병 특검법안)'을 재가했다.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됐고, 특별검사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독점적으로 부여해 대통령 인사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은 즉각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야당과 국민에 전쟁을 선포했다'며 총공세를 폈다. 거부권 행사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한편,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도 함께 개최할 태세다.

야권은 총선 국면에서 의도한 '특검 정국'에서 연일 대통령 때리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가족이나 측근을 위해 사적으로 행사해선 안 된다'(민주당 윤호중 의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대대적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 스스로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지 않기를 바란다'(민주당 박찬대 의원),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헌법이 규정한 거부권 취지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헌법 위반 사례로 곧 탄핵 사유'(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 등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아예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께서 명예롭게 자신의 임기 단축에 동의하고 개헌에 동의하면 국정 운영 실패와 비리, 무능, 무책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바꿨다는 점에 기여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조롱이라고 해도 무방한 수위다.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이 인정되는 이유는 미국식 대통령제하에서의 '철저한 삼권분립' 때문이다. 의회가 인사청문회, 예산심의·의결권 등을 통해 정부를 통제하는 것처럼, 대통령은 문제 소지가 있는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을 무력화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기틀을 붕괴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회의 입법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통제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채 상병 특검법안을 포함해 총 10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중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이 폭락할 때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매입하도록 해 포퓰리즘 논란이 있고, 노동조합법(이른바 노란봉투법)은 파업으로 손해를 봐도 기업이 파업을 한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해 역시 논란의 여지가 컸다.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이런 입법들이 절차와 내용 면에서 과연 정당한가.

야당의 삼권분립 무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정부가 반대하자, 국회에서 특별법 형태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정부 예산 편성권 침해에 따른 위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야당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할수록 더 반색할지도 모르겠다. 전가의 보도 같은 '총선 민심'을 앞세워 그 직을 계속 흔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소통' '협치'를 외치면서 연일 정쟁을 자극하는 야당을 보면서 다가오는 22대 국회에 대한 걱정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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