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과급을 둘러싼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노사갈등은 우리 노사관계가 87년 체제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은 현실의 문제를 풀려다 또 다른 문제를 낳는 풍선효과의 전형이고, 주 52시간 상한제 역시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제도와 의식·관행의 불일치와 지체에는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우리는 이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갈등의 증폭이 아닌 실질적 해법을 찾는 '지혜로운 설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가운데 지난 5월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노사정 대표자들이 사상 처음 나란히 자리를 함께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 장면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악수하고, 선언하고, 흩어지는 패턴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같은 날 여의도에서 한국노총이 "되찾은 노동절, 더 큰 전진"을 외치는 동안, 광화문에서는 민주노총이 "7월 총파업과 원청교섭 쟁취"를 결의했다. 같은 날, 같은 도시, 완전히 다른 체온. 이 간극이 오늘 한국 노동의 현주소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노사정 대타협은 빛나는 출발이었지만, 그 이후의 궤적은 실망스럽다. 합의는 파국으로, 대화는 결렬로, 참여는 탈퇴로 반복되었다. 민주노총은 1999년 탈퇴 이후 27년이 지난 지금도 경사노위 밖에 있다. 합의 미이행, 대화보다 투쟁을 앞세우는 문화, 부족한 대표성과 취약한 리더십. 이 불신은 어느 한쪽만의 책임이 아니라 노사정 모두가 함께 쌓아온 부채다. 사회적 대화 2.0을 선언하기 전에, 이 실패의 역사를 정직하게 직시해야 한다.
이번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의제의 실질성이다. 정년연장, AI 전환, 노동시간 단축은 모두 서로 맞물린 문제다. 정년을 늘리려면 연공급 위주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꿔야 하고, AI 도입을 허용하려면 재배치와 재훈련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하며, 노동시간을 줄이려면 생산성과 임금의 관계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직무 소멸 시 재배치 의무화, AI 도입 시 노동자 대표와의 사전 협의는 혁신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혁신의 비용을 사회 전체가 공정하게 분담하는 촉매제다. 연동된 의제를 패키지로 묶어 서로의 요구를 동시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맞교환하는 협상의 용기가 필요하다.
둘째, 대표성의 확장이다. 경사노위의 가장 큰 구조적 약점은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대화 구조 안에 없다는 점이다.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도 함께 개선해야 하며, 노동조합 역시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대표성과 리더십을 확립하여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참여가 당장 어렵다면, 미조직 노동자 대표를 별도 채널로 참여시키는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대화의 테이블이 조직된 소수만의 것이 되는 순간, 합의는 처음부터 정당성에 흠집이 생긴다.
셋째, 이행의 강제력이다. 아일랜드와 네덜란드가 사회적 대화로 경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합의 내용이 예산과 입법에 직접 연결되는 제도적 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합의는 했지만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구조가 반복되어 왔다. 이행 여부를 공개적으로 점검하고 책임을 묻는 독립적 모니터링 기구를 갖춰야 한다. 선언으로 시작해 제도로 끝내는 것, 그것이 성공한 사회적 대화의 공통점이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사회적 대화를 계속하는 한 진보한다"고 했다.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이 모두 고통을 나누는 과정이다. 유연성과 안정성, 혁신과 보호를 맞교환하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회피하고 선언만 반복한다면, 영빈관의 악수는 또 하나의 사진으로 끝날 것이다.
우리의 노동시장 구조와 정치사회 문화에 맞는 사회적 대화 모델 자체를 함께 설계하는 일도 사회적 대화의 과제다. 2026년 노동절이 파편화된 각자도생의 갈등을 넘어 상생과 연대의 노동생태계로 도약하는 분기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말이 아니라 제도로, 선언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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