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리뷰] 실종된 진실과 정의 사이, 악(惡)의 연쇄된 복수 <연쇄된 악의>, 청소년 드라마 같은 연극, 변영진 연출의 <나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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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극단 제자백가, 연쇄된 악의
극단 제자백가, 연쇄된 악의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실종 아동 신고는 해마다 약 2만 5천 건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분 1~2일 이내에 발견된다. 그러나 20년 이상 장기 실종 아동도 1천여 명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실종 아동 문제는 범죄를 넘어 해외 입양·가족 해체·사법 시스템·국가의 관리체계와도 연결되어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1991년 대구에서 발생한 '개구리 소년 사건'은 초등학생 5명이 와룡산으로 도롱뇽알을 잡으러 간 뒤 2002년 유골 상태로 발견된 뒤에도 타살 가능성, 은폐 의혹, 초동수사 문제가 제기되었고, 공소시효 문제까지 겹치며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사라진 진실'의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실종 아동을 모티브로 한 연극이 <연쇄된 악의>(극단 제자백가, 연출 황태선, 작 홍진형, 프로듀서 이훈경, 공간아울)이다. 연극은 한 아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해자와 판사, 피해 아동 아버지가 연쇄적으로 집단 가해자가 되어가는 악으로 파멸하는 복수극이다. 그러나 복수극 형태로 파국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종아동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서사 수면 밑으로 흐르는 것은 한국 사회 사법 정의를 둘러싸고 있는 진실의 실종을 추적한다. 정의(正義)가 어떻게 악(惡)으로 변질되는가를 추적하는 군상 비극의 스릴러라고 할까.

극단 제자백가, 연쇄된 악의
극단 제자백가, 연쇄된 악의

◇아이의 실종과 죽음, 연쇄된 악의의 진실 <연쇄된 악의>의 종말

연극은 15년 전 발생한 한 아동 납치 사건과 현재 두 아이가 실종된 사건을 병치(竝置)시키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떻게 뒤바뀌고 반복되는지를 통해 복수와 정의, 죄의식과 복수의 욕망이 연쇄적으로 증폭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서사는 이렇다. 과거 사건의 가해자였던 남우(권정택 분)는 현재시점에 실종 아동의 아버지가 되고, 과거 피해자였던 태규(이재영 분)가 복수의 중심에 서게 되는 가해자로 바뀌면서 연극은 범죄 스릴러를 넘어 복수와 사법, 여론과 미디어,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뒤엉키며 연쇄적으로 악을 생산하는 구조로 미로처럼 엉켜있다. 대체로 이런 류를 모티브로 한 영화나 연극 작품들은 실종 아동의 부모, 성장기, 혹은 입양 이후의 서사들로 모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연쇄된 악의>(작 홍진형, 공간아울)는 실종 사건 이후 남겨진 피해와 가해자의 경계가 무너져 가는 시간을 통해 복수가 연쇄적인 악의 고리가 되어가는 한국 사회의 불완전한 정의 구조를 형상화 한다.

연극은 15년 전 발생한 한 아동 유괴 사건에서 출발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납치된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범인은 당시 청년 남우였다. 그는 끝까지 살인을 부인하고, 판사 역시 국과수(國科搜) 소견을 근거로 직접적인 살해 의도를 단정할 수 없다며 7년 형을 선고한다. 그 순간부터 피해 가족의 삶은 멈춰버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은 죄책감과 상실, 분노 속에서 붕괴되기 시작한다. 15년이 흐른 현재, 이번에는 남우의 아이가 실종되면서 과거의 비극은 또 다른 납치 사건으로 되돌아온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가 뒤엉킨 채 복수극이 악의 순환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연극은 남우가 형기를 마친 시점부터 흥미로워지기 시작한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사라진 딸을 잊지 못하는 피해 아버지 석태규, 자신의 판결에는 오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판사 백동호(윤성원 분), 유괴를 인정하면서도 살인은 부인하는 당시 가해자 정남우, 남편의 과거 가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자신의 아이 실종에만 집착하는 부인 서경미(노혜란 분), 사법 정의를 내세우며 판사를 마녀사냥하듯 추적하는 유튜브 채널 '무상'을 운영하는 유튜버(전규민, 홍현지)까지 얽히면서 비극은 점차 '연쇄된 악의(惡意)'로 전이되기 시작한다. 이 극의 아동 실종과 유괴 사건의 흥미로운 2라운드는 판사의 딸인 백혜수 변호사(이유진 분)의 아이와 가해자 정남우의 아이가 차례로 실종되면서 단순한 복수 범죄 스릴러를 넘어서 흥미로운 반전을 보여준다. 피해 아버지의 복수 속에서 실종된 아이들이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뒤바뀐 상태로 일정 기간 보호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피해와 가해, 정의와 진실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각자의 시선으로 뒤틀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연쇄된 악의>는 복수와 정의의 얼굴이 또 다른 악으로 증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극단 제자백가, 연쇄된 악의
극단 제자백가, 연쇄된 악의

<연쇄된 악의>는 무대 또한 한문철 변호사의 블랙박스 영상과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한 아이의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사건 현장을 무대 세트화해 놓은 것처럼 차선 도로로 연결해 복수와 정의, 진실의 실종이 연쇄된 악의처럼 얽혀 있는 미로 구조로 형상화 했다. 여기에 실종 사건을 15년 전과 현재의 사건으로 중첩해 액자형 구조로 끌고 간다. 객석은 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는 방청객이자 목격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고, 실종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극 중 인물들의 진술과 기억, 감정이 교차하면서 사건은 끊임없이 가해자와 파해자의 각기 다른 시선으로 재구성된다. 결국 <연쇄된 악의>가 향하는 지점은 아동 실종과 유괴 살인을 둘러싸고 진실과 정의가 재구성되면서 사건의 진실은 실종되고 악은 연쇄화되어 진실과 정의는 편집되고 왜곡되고 있음을 드러내며 실종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 사법 정의의 불완전성을 부각한다.

실종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석태규의 아내(신성미 분), 자식의 실종만이 더 중요한 부모, 자신의 판결 정의가 정당하다고 믿으면서도 연쇄된 악의에 침묵하는 판사와 변호사 딸, 진실의 사건을 끝내 파헤치지 못하는 방송사 PD(배천수 분), 실종 사건을 예능화시키는 유튜버들이 실종 사건을 견인하는 중요 인물들이다. 마지막 장면은 작가의 의도와 방향성이 다소 실종된 듯 연출이 봉합하는 인상을 남긴다. 작품의 메시지를 마지막 지점에서 더욱 선명하게 형상화할 필요가 있다. 실종된 한 아이가 마치 예능의 대상화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사 중심의 실종 사건이 지닌 진부함을 탈피한 무대 구성과 사건을 따라가게 만드는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유튜브 채널과 유튜버 극중 인물을 캐릭터화·영상화해 과거 실종 사건과 아이의 죽음,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실종을 실제 유튜브 채널과 TV 시사 프로그램을 마주하는 구도로 장면전환을 속도감 있게 형상화해 연쇄된 악의의 복수와 정의에 대한 윤리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 것은 이 작품의 장점이다. 결국 <연쇄된 악의>는 실종 사건을 둘러싼 복수와 정의의 얼굴들이 어떻게 또 다른 악으로 증식되는가를 보여주며 사건의 진실은 실종되고 악은 연쇄화되며, 진실과 정의는 끊임없이 편집되고 왜곡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변영진 연출, 나의 별
변영진 연출, 나의 별

◇ 로켓타고 50년 뒤 '화성 이주 시대' 변영진 연출의 <나의 별>

변영진 연출의 <나의 별>(스카이시어터)은 <우리 별>로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2010)을 받은 시바 유키오의 작품이다. 일본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데 청소년 드라마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배경은 공상과학적인데 교실 분위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학교 주변에는 로켓 활주로가 있다는 설정이고, 온난화로 인구는 점차 소멸되어 로켓을 타고 화성으로 이주하는 시대다. 설정만 그렇고 교실 분위기는 익숙한 청소년 드라마 감성을 보여준다. 전교생이 10여 명뿐이고 남학생은 샤인(김이담 분) 혼자다. 음악실에 모여 음악, 댄스, 연극 등을 콜라보한 작품 '나의 별'로 마지막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청춘들의 짠한 우정과 사랑, 지구환경 문제와 인구소멸 문제까지 더해 배경은 50년 뒤 근미래로 향한다. 무대는 동아리방 같다. 악기들, 피아노, 사물함들이 널려 있고 뒤편으로 식물들을 유리 룸 복도처럼 배치해 작품의 주제를 이미지화했다.

첫 장면부터 90분 동안 배우들이 대사를 쏟아내는 속도감과 현실감 있는 교실 분위기의 리액션들이 장면 분위기의 활력을 보여준다. 그사이에 연습 멤버 스피카(한수림 분)가 가족들과 함께 화성으로 이주한다고 하면서 친구들 사이에는 짠한 우정의 전류도 흐른다. 섭섭함에 나나호(오유민 분)와 갈등하고, 화성 이주와 지구 지키기, '나의 별' 축제를 만들어 가는 10여 명 청춘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이 작품의 플롯이다. 오히려 몸이 아픈 히카리(전하영 분)는 화성에서 지구별로 전학을 와 '나의 별' 멤버가 되고, 할머니를 혼자 두고 화성에 갈 수 없다는 여장부 같은 메구(송나영 분) 등이 극 중 분위기를 속사포처럼 끌고 간다. 마지막은 교실 뒤로 화성으로 날아가는 로켓을 바라보며 청춘들이 '나의 별' 축제를 준비하는 장면이다.

스피카의 목소리가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고, 교실 뒤편으로는 화성으로 향하는 로켓의 굉음이 가까워진다. 마지막 장면은 90년대 일본 청춘드라마의 감성을 자극하는 축제 같기도 하다. 수많은 청춘의 별들이 존재하지만, 인구소멸과 지구의 위기, 머지않은 미래에 일론 머스크가 개발한 로켓을 타고 화성 신도시로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시대에 각자 삶의 소중한 '나의 별'은 무엇일까. 배우들의 연기적 에너지가 화성발 로켓 축제 같다. 윤지현, 김려은, 한수림, 송영미, 오현서, 김유리, 이다혜, 박지예 배우들도 고른 캐릭터 연기와 집단적 앙상블을 보여준다. 특히 오랜만에 연극무대에 선 아카네 역의 배보람이 극의 중심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고, 메구 역의 송나영은 작품에 조미료 같은 '피도 눈물도 없는 활력'으로 극 중 장면을 전환한다.

변영진 연출, 나의 별
변영진 연출, 나의 별

◇ '이카이노 바이크' 타고 '불의 전차'로 달리며 백상 젊은연극상 주인공 된 <변영진의 별>

'피도 눈물도 없는 재일교포 청춘들'을 집단적 에너지로 탁월하게 보여준 연극 <장소>로 올해 백상예술대상 젊은 연극상을 받은 변영진 연출의 특화된 장점은 뭘까. 아마 배우들의 집단적 화력의 에너지, 몰아치는 대사의 리듬감과 장면의 톤을 조절하며 속도감 있게 몰고 가는 등·퇴장의 전환성, 희비극적인 장면을 웹툰처럼 전경화시켜 내는 미장센들이 연출의 테크닉들이다. 장점들이 고여 연출의 가이드(핵심 정리) 같은 작품이 <이카이노 바이크> 정도쯤 될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강하고 희곡이 빈곤하면, 여백을 채우기 위해 강조는 커지고 설정은 비대해진다. 이 지점부터 연출의 무대 건축물은 겉도는 에너지로 채워지기 마련인데, 변영진의 변화는 재일조선인 작가의 전경을 담백하게 압축하면서도 희비극적인 웃음과 연출적 포인트를 비트감 있는 강렬함으로 살려낸다. 작가의 스토리를 조절해 변영진식으로 방어하기도 하고, 그 여백을 젊은 관객층이 공감할 수 있도록 무대를 살려낸다는 점이 이 작품부터의 변화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일본희곡에 특화된 연출의 내공이 쌓였다고 할까.

변영진 연출은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하고 연극동아리 시절부터 연극 인생으로 전진해 왔다. 2015년 극단 불의전차를 창단한 뒤 대체로 재일교포 작가들의 희곡을 공연해 오면서 대학로 변방에서 버텼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변 연출의 작품은 관객 마니아층이 두껍고 배우들도 연출을 추종하는 수준이다. 창단 10년 만에 지난해 서울연극제에서 연출상과 이례적으로 배우 전체가 연기상(공동)을 받았고 백상예술상에서 젊은 연극상까지 받았으니 정의신류(극단명도 이러한 이유로 정의신 작·연출의 <나에게 불의 전차>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라는 꼬리표는 떨어진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재일교포 전문 연출가 보다 폭넓은 희곡을 변영진식으로 무대화하는 작업이 숙제일 듯하다. 변영진의 <나의 별>은 7월 5일까지 스카이시어터에서 공연된다. 변영진 연출의 <나의 별>은 중·고교생부터 20대까지 보면 좋을 작품으로 특화된 연극이다.

변영진 연출, 나의 별
변영진 연출, 나의 별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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