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영화 <넘버 3>를 건달들의 우스갯소리와 비속어가 난무하는 코미디로 기억하곤 한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이보다 더 처절하고 냉혹한 '생존의 교과서'는 없다. 실력은 없으면서 목소리만 컸던 서태주의 몰락은, 오늘날 국제정치 현실과 우리 정치판의 소위 '서태주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경고다.
"내 말에 토 다는 XX는 배신자야!"라고 외치던 그의 모습은, 명분과 실력이 완전히 분리된 조직의 전형적인 말로를 보여준다. 낙인과 배제만으로 질서를 유지하려는 권위는 겉으로는 강해 보일지 모르나, 위기 앞에서는 가장 먼저 붕괴하기 마련이다.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오늘의 국제정치 역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들은 가치와 동맹을 말하지만 실제 선택은 냉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미·중 경쟁 또한 체제의 우열을 가리는 싸움이라기보다, 누가 더 오래 버티고 상대에게 더 큰 비용을 강요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1등'이 아니다. 사라질 경우 다른 국가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급격히 커지는 존재, 즉 '대체 불가능성'이 생존을 좌우한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는 '넘버 3' 전략이다. 1인자도 2인자도 아니지만, 자신이 빠지면 판 자체가 흔들리는 그 존재 말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강대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스스로 '넘버 2'를 자처하며 미국에 도전하고 있지만, 정밀 제조와 군사적 신뢰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비효율과 불확실성이 지적되는 만큼, 위기 상황에서 일관된 선택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결국 국제 환경에서의 지위는 선언이 아니라 축적된 역량과 신뢰로 결정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생존 방식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는 전면전에서의 열세를 인정하는 대신, 드론과 비대칭 전력을 활용해 러시아의 핵심 인프라를 타격하며 전쟁의 부담을 상대 내부로 전이시키고 있다. 그 결과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사라질 경우 전체 판이 흔들리는 '버릴 수 없는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1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없으면 판 자체가 흔들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 본질이다.
이 개념은 우리 방위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육군이 실전 배치한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KUH-1)은 미국제 UH-60을 정면으로 대체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우리 환경에 최적화된 전력을 확보하고 틈새 시장에서 경쟁력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최근 해외 수출이 시작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격, 성능, 후속지원 가운데 하나라도 "수리온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시장은 언제든 다른 선택지를 찾을 것이다. 전략은 의도가 아니라 검증된 성과로 완성된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정치에서는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어느 편에 설 것인가'에 익숙하지만, 국가가 어떤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방향이 흔들린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장기적인 경쟁력을 축적하기 어렵다.
결국 선택은 유권자에게 돌아온다. 우리가 갈등과 감정에만 반응한다면 정치 역시 그 수준에 머문다. 반대로 이 나라가 어디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기준으로 선택한다면, 정책과 리더십도 그에 맞게 바뀔 수밖에 없다. 유권자의 눈높이가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
대구·경북 역시 같은 과제 앞에 서 있다. 수도권을 따라가는 '넘버 2' 전략으로는 한계를 넘기 어렵다. 첨단부품, 방산, 미래 제조, 인재 양성 분야에서 "이 지역이 아니면 안 된다"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특정 영역에서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때 비로소 지역의 지속가능성도 담보된다.
생존의 기준은 단순하다. 규모가 아니라 대체 가능성이다. 없어져도 되는 존재는 결국 사라진다. 강한 나라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나라, 그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다시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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