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동물 병원의 조건
보호자의 입장에서 좋은 동물 병원은 어떤 곳일까? 첫째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수의사를 찾는 것이다. 둘째는 24시간 진료 유무다. 반려견, 반려묘가 낮에만 그리고 평일에만 아플리가 만무하니 그렇다. 세 번째는 병원비가 적절한지 여부다. 네 번째는 병원이 청결한지를 살펴보고 기왕이면 시설과 의료 장비가 좋은 곳을 찾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의료진이 친절한 곳을 선택하고 싶을 것이다.
수의사의 입장에서 좋은 동물병원은 어떤 곳일까? 필자의 입장에서 좋은 동물 병원은 '수의 테크니션'이라고 불리는 동물 간호사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이 아프면 동물병원으로 오게 된다. 낯선 환경에서 처음 보는 수의사가 진찰을 하며 여기저기 누르고 만지고 아픈 곳을 찔러대면 불안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힘든 사람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동물 간호사들이다. 아파서 온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사나울 수밖에 없어 케어하는 과정에서 동물 간호사를 할퀴거나 물기가 십상이다.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예민하던 녀석들은 동물 간호사들의 사랑 담은 토닥임에 차츰 순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결국 아픈 상황에서 동물 환자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바로 따뜻한 동물 간호사의 품이다.
과거에 비해 동물 의료 환경들이 많이 바뀌고 개선되기도 했지만, 그중 단연 기분 좋은 부분이 있다. 바로 동물 간호사들이 동물 환자를 대하는 훌륭한 태도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병원에서 동물 환자를 대하는 태도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흔히 기성 세대들은 MZ세대를 보며 '우리가 젊을 때는 저렇게 이기적이지 않았는데 말이야.'라며 혹평을 하기 일쑤다. 하지만 겪은 시대가 다른데 똑 같은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성 세대의 젊은 시기 근로 환경과 노력들을 단순히 MZ세대들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까이서 본 MZ세대들은 결코 이기적이지 않다. 실제로 수의사로 일하면서 겪은 동물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동물 간호사의 일상들을 소개해 본다.동물 간호사를 희망하는 MZ세대에게 작은 정보가 될 것이다.

◆상처를 입더라도 품어주는 일
동물병원에 맡겨지는 동물은 자신이 가장 아프고 불안한 순간이다. 공포스러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링거 수액 치료도 받아야 할 정도로 질병이 심각하다 보면 입원은 불가피하다. 이 때 동물 환자는 매일 오전 채혈을 한 후 혈액 검사를 받아야 하며 상처가 있다면 소독 처치도 받아야 한다. 누구나 싫어하는 치료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한 매 순간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바로 동물 간호사들이다. 불안한 동물 환자가 꼬옥 안길 정도로 의지할 만한 간호사가 있어 준다면 동물 환자의 불안은 한층 해소된다. 예민한 동물 환자에게 할퀴어지고 물리더라도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일은 동물 간호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인내심과 도전이 필요한 일
입원치료가 요구되는 동물 환자의 상당수는 동물이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먹이거나 처치를 받아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 특히 췌장염 등의 소화기 질환으로 입원한 동물 환자에게는 처방식을 강제로 급여해야 하는 상황이 필요하다. 강제 급여는 간호사가 잘 다치는 상황이기도 하다. 위압적으로만 시도해서는 불가능하며 단계적으로 동물 환자의 신뢰를 얻은 후에야 가능하다.
동물 환자마다 특별히 예민한 부위와 자세가 있는데 과거 경험들을 통해 경계심이 깊이 기억되어있기 때문이다. 경험있는 동물 간호사는 이러한 면들을 감안하여 가장 친근해보이는 자세로 안전한 부위부터 터치한다. 때로는 경계를 허물기 위해 울타리 공간에 들어가 함께 지내기도 한다.
점차 동물 환자가 간호사를 신뢰하게 되면 동물 환자들도 호의적인 표현을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 때부터 동물 간호사가 처방식을 강급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는 것이다. 상당한 인내심을 가져야 하며 도전이 반복되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전문 의료지식이 필요한 일
동물 병원에 입원한 동물 환자 대부분은 중증 환자들이다. 비슷한 수액 치료라 하더라도 환자들의 상태에 따라 전해질과 약물들의 함량들이 달라진다. 입원한 동물 환자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꽤 높은 숙련도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힘 없는 동물 환자에 대한 배려와 함께 실수해서는 안되는 신중함이 동물 간호사의 덕목인 셈이다.
동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수의사의 처방 내역을 이해하고, 그 처방들을 언제, 얼마나 투약을 할 것인지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등을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환자의 체온, 혈압, 호흡수, 심박수 등을 정해진 시간대마다 체크하고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수술실이야말로 동물 간호사의 전문성이 가장 필요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항상 긴장감이 돌며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도 차분하게 수의사를 도와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고령의 동물 환자가 갑자기 위험에 빠지기도 하며, 응급 교통사고 환자가 피를 철철 흘리며 다급하게 수술을 받기도 한다. 이럴 때 숙련된 외과 수의사 만큼이나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가진 동물 간호사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한 인력이 된다.

◆구조견의 고통을 공감하는 일
어릴 적 묶어둔 목줄이 탈락되지 않은 채 방치된 유기견이 SBS를 통해 구조되었다. 목줄이 살을 파고들어가 목을 압박하다 보니 유기견의 머리가 몸통 만큼이나 부푼 상태였다. 구조 후 바로 목줄 제거를 위한 긴급 수술이 이루어졌다. 살가죽을 파고든 목줄은 경정맥과 유착되어 있어서 3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유기견이나 구조견은 이미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경계심이 한껏 고조되어 있기 마련이다. 수술 후 유기견을 돌보는 과정은 수술보다 더 힘들었다. 2주가 지나서야 간호사가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유기견과 구조견을 대하는 동물 간호사들의 손길은 유난히도 정성스러웠다. 유기견의 고통을 공감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태도였다.
또 하나의 케이스는 뒷다리가 마비된 유기견 누리를 돌보는 가족들이 SBS에 사정을 제보한 경우다. 누리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허리 이하의 근육은 위축되었으며 후지 관절의 변형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누리를 돌보는 보호자분이 어떻게든 치료해 보기를 희망했음으로 재활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동물 재활 치료는 30분 이상의 긴 시간 동안을 동물 환자와 함께하는 과정이다. 누리의 경우 전침치료, 레이저 재활 치료, 관절 운동, 독 피트니스 등의 재활 치료가 반복되었다. 중형견에 해당하는 누리는 재활 치료 과정에서 소변과 대변을 흘리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동물 간호사는 그 뒷처리를 다 감당했다.

◆생명을 보내고 맞이하는 일
몇 해전 무지개 다리를 건넌 나의 반려견 깜순이가 기억난다. 깜순이는 심장병과 신부전을 오가며 집중 산소 공급과 수액 치료가 반복되어야 했던 상황이다보니 입원 치료는 불가피했다.
필자가 수의사이다 보니 곁에서 치료하면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입원 기간에는 최대한 면회도 자제해야 했다. 나와의 면회 이후 깜순이는 더 불안해 하고 과흥분하다 보니 심장병 치료에는 더 역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담 간호사가 처치하거나 위로해줄 때가 훨씬 편안해 보였다.
보호자와의 면회 이후 동물 환자가 불안과 흥분 증상을 겪는 경우가 있다 보호자가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 기대하는 동물 환자가 재차 버려졌다고 불안해 하는 것이다. 입원 집중 치료가 필요한 동물환자에게는 동물간호사의 절제된 배려가 더 필요하다.
죽음이 있으면 탄생도 있기 마련이다. 귀여운 아기 동물들을 만나면 그저 행복하다. 하지만 그 소소한 낙에 비해 업무는 쉽지 않다. 병원 특성상 야간 근무가 필요한데 밤에 일하고 아침에 퇴근하면 남들과 생활 시간이 달라지고 생활 리듬이 깨져서 몸이 안 좋아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미소로 동물 환자를 대하는 MZ 간호사들을 보면 나조차도 참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기성세대 여러분, 아직도 MZ세대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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