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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김교영] 대구와 대만의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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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보라, 스크램의 행진!/ 의를 위하여 두려움이 없는 10대의 모습,/ 쌓이고 쌓인 해묵은 치정 같은 구토의 고함소리./ 허옇게 뿌려진 책들이 짓밟히고/ 그 깨끗한 지성을 간직한 머리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경북 경산 출신의 김윤식(1928~1996) 시인의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란 시(詩)의 한 부분이다. 이 시는 '2·28 대구학생데모를 보고'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시인이 농사지은 땅콩을 대구 중구 염매시장에 팔러 가는 길에 학생 시위대를 목격하고 쓴 것으로 알려졌다.

2·28민주운동이 65주년을 맞았다. 2·28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다. 1960년 2월 28일 3·15 대선을 앞두고 대구의 8개 고교 학생들이 자유당 정권의 불의(不義)에 항거해 일어난 시위다. 이날 시위는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導火線)이 됐다. 이런 역사적인 민주화 운동이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했다. 다행히 2018년 정부는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대만에도 2·28이 있다. 대만 사람들은 '228(얼얼바)사건'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11월 대만 여행을 하던 중 타이베이시 중심가에서 '228평화공원'을 마주쳤다. 대구에 '2·28기념중앙공원'이 있으니, 친밀감이 들었다. 1947년 발생한 대만의 '228'도 민중 봉기(蜂起)다. 양조위가 나오는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다. 담배 행상 여인 구타 사건이 촉발한 228은 국민당 군대의 야만적인 진압으로 2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대학살이었다. 사건의 진실은 40년간 묻혀 있다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진상이 밝혀졌다. 대만 총통은 1995년 유족과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한국과 대만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었다. 제국주의(帝國主義) 침탈의 아픈 역사를 함께 갖고 있는 것이다. 대구 2·28과 대만 228은 해방 후 암울한 독재(獨裁)에 맞선 민중 운동이란 공통점이 있다. 대만 국민들에게 228은 참혹한 역사이면서 민주화의 역사로 각인(刻印)돼 있다. 역사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열게 한다. 우리의 2·28은 어떤가. 마산의 '3·15의거'나 '4·19혁명'은 잘 알지만, 대구 2·28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학교에서 2·28을 배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국정교과서에는 사진 한 장 실린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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