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이 50대에 이사와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자신의 집을 그린 '인곡유거'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옥인동으로 인곡, 인왕곡이라고 했던 인왕산 골짜기 마을이었다. 인왕산을 뒤쪽으로 그려 넣었고 넓은 마당엔 오동나무, 버드나무가 듬직하게 자랐다. 넝쿨 식물까지 왕성하게 뻗고 있어 마치 숲속인 듯하다. 연두 빛이 온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신록의 계절이었다. 가득한 봄빛 속에서 겸재 선생은 문득 자신의 집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가보다.
흙담을 길게 둘러쌓았고 대문은 볏짚을 올린 초가지붕인데 본채는 기와집이다. 사랑방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단정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그려 넣었다. 사방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유학자 차림이다. 그 옆으로 책무더기가 보인다. 겸재 선생이 스스로 표상한 자신의 정체성은 글 읽는 문인이다. 자화상적 이미지임이 분명한 귀한 작품인데 너무도 조촐해 아쉽다.
자연 속에서 책과 함께하는 겸허한 자족의 미학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그래서 겸재(謙齋)라는 호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겸재는 정선이 스스로 지은 자호(自號)라고 이웃사촌인 관아재 조영석이 밝혀놓았다. '겸손할 겸(謙)'은 '주역' 겸괘에서 나왔다. 풀이는 "겸손하면 형통하니 군자가 마침이 있다."라는 "겸형(謙亨) 군자유종(君子有終)"이다. '주역'의 64괘 중 으뜸으로 길한 괘라는 분도 있다. 정선은 '주역'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정선은 84세까지 장수하며 만년에 이를수록 필치가 더욱 오묘해져 '만익공묘(晩益工妙)'라고 했다. 정형산수, 시의산수, 진경산수 등 모든 장르의 산수를 다 잘 그렸고 영모화, 화훼화, 고사인물화, 기록화 등 못 그리는 그림이 없어 많은 명작을 남겼지만 금강산도를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금강산 곳곳의 명소도 그렸고 내금강 전체를 한 폭에 담은 금강전도도 그렸다. 금강전도는 대폭으로도, 소폭의 화첩으로도, 일만이천봉을 한 손안에 들고 훨훨 부치며 그 골바람으로 땀을 식히는 부채그림으로도 전한다.
정선의 금강전도를 대표하는 대작인 국보 '금강전도'를 비롯해 무려 165점을 한 자리에 모은 '겸재 정선'전이 지금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6월 29일까지). 삼성문화재단이 환갑을 맞은 창립 60주년을 기념한 이 전시는 정선의 탄생 350주년인 내년에는 대구간송미술관으로 옮겨올 예정이다. 삼성문화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공동기획하고 국립중앙박물관 등 18개 기관 및 개인 소장가들이 협력한 대대적인 전시다.
정선은 '금강산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고 자신만의 금강전도를 완성했다. '신필(神筆)', '동국백년무차수(東國百年無此手)'라는 칭송을 받으며 겸괘의 뜻대로 유종의 미를 거둔 대가 겸재 정선이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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