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교영] 주권자 의무 '투표'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유권자는 선거 이전에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가 263년 전에 쓴 '사회계약론'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을 뽑는 수많은 선거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무릎을 칠 만한 격언(格言)이다. 끝없는 정쟁(政爭), 난데없는 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입법 독주와 사법권 침해에 이어 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치인의 행태를 목격했던 국민들이니 일러 무삼하리오.

그렇다고 선거를 몰라라하고 투표를 포기할 수는 없다. 국민의 '정치 외면', '정치 혐오'는 악덕한 정치 모리배(謀利輩)의 노림수다. "민중은 개돼지"(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사)란 생각이 그들의 속내일지 모른다. 국민은 이에 굴복하면 안 된다. 루소의 지적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루소의 격언은 '노예로 돌아가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투표하라'는 역설(逆說)로 봐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세력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통찰했다.

오늘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대통령 선거는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의 핵심이다. 그 중요성은 헌법 제1조 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국민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투표는 주권자의 권리이며, 의무다. 참정권(參政權)은 어느날 문득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니다. 민중의 피와 역사의 도도(滔滔)한 힘이 쟁취한 것이다.

현실 정치는 국민을 배신했다. 거짓과 위선의 정치는국민을 힘들게 했고, 나라를 도탄(塗炭)에 빠뜨렸다. 특히 이번 대선은 '정치 대참사'의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정치의 민낯은 대선 캠페인에서 또 드러났다. '찍을 사람이 없다'고 하는 국민들이 많다. 그렇다고 물러서면 안 된다. 투표로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 조금 더 고민해보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면 된다. 이마저 여의치 한다면 '최악'을 피해 '차악'이라도 뽑아야 한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웠고, 진흙탕에서도 연꽃을 피워냈다. 그게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이다.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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