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건 뭘까. 누군가는 말한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나다움'이란 나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나 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진정 나다움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통해 의문을 던지는 일이 필요하다.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소노 아야코는 자신의 책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서 "사람은 자기다울 때 존엄하게 빛난다.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흉내내고 비슷해지려고 시도하는 순간 타고난 광채를 상실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나다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어떤 대학을 나오느냐에 따라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그것으로 인해 사회적 신분이 결정된다. 이 때문에 유치원부터 입학시험이 만들어지고 사교육 시장은 거대 산업이 됐다. 이런 이유에서 대한민국 청년들은 '나'를 찾기보다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한 천편일률적인 궤적을 따라간다.
이런 빤한 스토리에 반기(反旗)를 든 사람이 있다. 최근 '주식투자의 첫걸음은 기업분석부터'란 책을 낸 1996년생 변지희(29) 씨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그는 미술대학 재학 시절 핸드메이드 브랜드를 만들어 창업을 했다. 창업한 일을 위해 대학을 그만둔 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본격적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하면 결국 손해를 본다는 것을 깨달았고, 기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한 내용을 블로그에 꼼꼼히 기록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변지희 씨는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지속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궁리하다 다다른 곳이 주식이었다. 지금도 부딪히고 일어나며 배우고 있다. 이것이 삶을 어디로 이끌어갈지 미지수인 채 나아가는 지금의 과정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재미있다"고 했다.
-주식·경제 등과는 관련이 없는 미술대학 출신이다.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거나 만드는 걸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입시 미술을 했고 2015년 미술대학 디자인학부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자연스레 수공예품이나 문구용품 여러 소품을 만들게 됐는데 이게 판매가 되면서 창업으로 이어졌다. 그사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2018년쯤 학교를 그만뒀다. 이 일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좋아하는 일이었고 재미있었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계기는 뭔가.
▶주식투자를 맨 처음 시작한 건 2016년쯤이었다. 투자에 대한 깊은 고민없이 재미삼아 소액을 넣어보곤 했다. 부모님이 주신 용돈과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서 했었는데 그냥 사고 파는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투자금을 마련해 진지하게 주식시장에 뛰어든 건 2020년쯤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지속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궁리하다 다다른 곳이 주식투자였다. 핸드메이드 브랜드 일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긴 하지만, 이 일을 오래도록 하기 위해선 또 다른 수익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이때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시작한 건가.
▶아니다. 이때도 주식투자를 해야 할 목표만 있었을 뿐 준비는 돼있지 않았다. 분산투자를 해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첫 투자금을 단 5분만에 잃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 깨달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하면 결국 손해를 본다. 하지만 이 손해가 나에게 값진 교훈을 남길 수 있다면 그건 더 큰 손실을 막아주는 수업이 될 수 있다.' 그날 이후부터 충동적으로 주식을 사지 않았고, 차트가 아니라 기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주식투자에서 공부가 왜 중요한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식을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오르는 이유가 자신의 타이밍이 잘못돼서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음에 잘 하면 타이밍을 잘 맞출 거라고 기대하게 만드는 문제를 낳는다. 하지만 감 투자에서 비롯된 실패는 또다시 감 투자를 부르고 타이밍을 예측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제 경험이 그랬다.
사실 주식은 제 갈 길을 가는 거다. 다만 사람들이 본능에 따라 안전한 선택을 지향할 뿐이다. 본능과 관련한 무리 동물 이야기가 있다. 이들 동물은 다른 개체가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안전하다고 판단이 되면 비교해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생존의 장점이 있다. 옆의 동물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주식시장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이 특정 주식을 매수할 때 이를 따라가면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순간 시장은 이미 과열 상태에 가까워져 자신이 투자한 이후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부동산 투자는 시작하면서 공부부터 하지만 주식은 그렇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공부는 이런 실패를 줄이고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왜 기업분석인가.
▶어떤 방법으로 투자를 하든지 상관없이 기업을 파악하는 능력은 투자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이자 필수다. 기업을 이해하는 힘이 곧 투자 판단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 분석을 한다고 수익이 보장되진 않지만 수익을 만드는 투자엔 기업분석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식을 사는 건 결국 한 기업에 투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기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서 돈을 버는지, 앞으로는 잘 해낼 수 있을지조차 모른 채 투자한다면, 그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한다.

-책을 낸 이유가 궁금하다.
▶수년간 주식투자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다보니, 주변에서 '이제 주식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디서부터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하지만 주식 공부라는 게 워낙 방대하다보니 명쾌하게 조언을 해줄 수가 없어 아쉬움이 컸다. 실제로 주식투자에는 경제와 사회, 산업, 심리 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 있고 차트, 재무제표 등 공부할 것도 많아 단 하나를 꼽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질문은 저 자신에게 돌아왔다. 결국 제가 기업분석부터 시작했고 기업분석은 어떤 목표로 투자를 하더라도 알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더라. 주식 투자를 망설이는 이들, 그리고 주식투자에 갓 입문한 이들과, 지난 6년간의 제 경험을 책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저 또한 주식을 공부하며 알아가는 단계이기에 경험 많은 이들에겐 제 이야기가 설익은 것일 수도 있다.하지만 입문자들이 주식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자신만의 투자 기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식투자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지금 바로 뭐라도 시작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책을 사서 공부를 하던지 주식을 사던지 말이다. 투자를 결심했다면 목돈이 모일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적은 돈을 투자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이제 주식에 관심이 생긴다. 공부해보겠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1년 뒤 이들을 만나보면 대다수가 똑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살 걸'하며 후회하는 이들도 많이 봤다. 결국 정답은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식도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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