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5 매일시니어문학상 시·시조 수상작] 자화상 / 이주석

2025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부문 당선자 이주석 님.
2025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부문 당선자 이주석 님.

쌓이는 눈 위에 한 사내가 드러눕는다

욕망의 그림자가 양각된다

눈으로 얼굴 성형하고 눈사람으로 누워 있다

근엄한 얼굴 이면에

고리눈이 화장한 듯 실눈을 뜨고

매부리코에 배가 불룩한 풍채 좋은 사내

욕망이 쉴 새 없이 출렁이는 사내

눈은 사내를 탁본하여 길목에 눈사람으로 세운다

사내는 내심 마을 어귀 장승처럼 서 있거나

광장의 동상처럼 앉아 있길 바라겠지만

햇빛이 눈사람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대뜸 눈사람을 단죄하듯 칼질한다

원래 얼굴로 성형하듯 눈사람을 칼질한다

부끄럽고 가리고 싶은 부위가 먼저 녹아내린다

몇 겹의 가면이 벗겨지듯 얼굴이 일그러지고

구업이 쌓인 입이 뭉개지고

철판 같은 심장도 녹아 끈적끈적 흘러내리고

발기한 남근이 중성화된다

도려내야 할 부분이 많은 눈사람이다

눈사람이 녹아내려 환골탈태한 듯이

내 안으로 쑥 들어온다

일란성쌍둥이 듯

눈사람이 도리어 나를 해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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