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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밥부터 버섯부각까지…'도파민 미식'에 지친 현대인 겨냥한 '사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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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 이후 사찰음식 강의 조기 마감에 대기까지…대폭 상승
사찰음식 접한 외국인들 '최고의 비건 다이닝', '고급 K-스낵' 등 호평 잇달아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감각이 가장 큰 매력…유행 아닌 일상으로 자리잡길"

김정희(법명 수지안) 동화사 사찰음식 팀장. 동화사
김정희(법명 수지안) 동화사 사찰음식 팀장. 동화사

최근 방영된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2는 화려한 기술과 강렬한 맛의 대결로 화제를 모았다. 그 가운데 유독 시선을 끈 인물은 의외로 절제와 비움을 이야기한 사찰음식의 대가, 선재 스님이었다. 사찰음식은 더 이상 불자들만의 식문화가 아니라,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돌보는 하나의 선택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구 팔공산 자락의 동화사에서는 사찰음식 강의와 체험 프로그램이 연일 조기 마감되는가 하면 해외 방문객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사찰음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정희(법명 수지안) 사찰음식팀장을 만나봤다.

김 팀장은 동화사를 찾는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사찰음식의 미학을 설명하고, 그 음식이 어떻게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지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음식이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라는 점에 매료됐다고 한다. 사찰음식을 공부하며 약선(藥膳)을 함께 익혔고, 그 과정에서 '음식이 곧 약'이라는 원리를 체감했다.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 중인 김정희 사찰음식 팀장. 동화사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 중인 김정희 사찰음식 팀장. 동화사
외국인 수강생 대상으로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 중인 김정희 사찰음식 팀장. 동화사
외국인 수강생 대상으로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 중인 김정희 사찰음식 팀장. 동화사

흑백요리사2 방송 이후 현장의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과거 사찰음식을 불자 중심의 문화로 인식하던 분위기와 달리, 요즘 강의실의 주된 얼굴은 2030세대다. 김 팀장은 "자극적인 도파민 미식에 지친 젊은 세대의 이동"이라고 규정한다. 수강생 모집은 이틀 만에 마감되고, 빈자리를 기다리는 대기자 명단도 길어졌다. 해외 반응 역시 뜨겁다. 이미 몇 달 뒤 일정까지 예약이 끝났다. 그는 "세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사람들이 '진짜 쉼이 있는 밥상'을 찾고 있다"고 풀이했다.

동화사 체험관에서는 사찰 음식을 '心心(마음 심)한 사찰음식'이라 부른다.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강한 양념에 가려졌던 채소의 단맛과 흙내음이 살아나고, 먹고 난 뒤 머리가 맑아지는 청량함이 남는다. 김 팅장은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감각이 사찰음식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사찰음식에이 '오신채'를 쓰지 않는 이유 역시 수행과 맞닿아 있다. 마늘, 파, 부추, 달래, 양파 등 다섯 가지 채소는 자극이 강해 수행자의 정신을 산란하게 한다고 여겨진다. 익히면 욕망을, 날로 먹으면 분노를 자극한다는 설명도 전해진다. 대신 들깨, 제피, 가죽나물 같은 재료로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찰음식의 방식이다.

동화사의 시그니처 사찰음식
동화사의 시그니처 사찰음식 '버섯부각'. 동화사
두부를 구운 다음 소스에 조려서 속재료로 쓴 두부 김밥. 동화사
두부를 구운 다음 소스에 조려서 속재료로 쓴 두부 김밥. 동화사

김 팀장이 처음 사찰음식을 접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메뉴로 가장 먼저 꼽은 것은 '연잎밥'이다. 찰곡물과 견과류를 연잎에 싸 쪄낸 이 음식은 은은한 향으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어 동화사의 시그니처 메뉴인 '버섯부각'이 뒤를 잇는다. 채소를 말리고 찹쌀풀을 입히는 오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부각은 바삭한 식감 뒤에 깊은 풍미를 품고 있어 미식가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마지막으로는 '버섯들깨탕'. 고기 없이도 충분한 감칠맛을 내는 이 탕은 MZ세대와 외국인 수강생들의 반응이 특히 좋다.

외국인 수강생들은 사찰음식을 '최고의 비건 다이닝'으로 받아들인다. 화학 조미료 없이도 깊은 감칠맛을 구현하는 발효와 천연 육수의 원리에 놀란다. 김 팀장은 한 캐나다 부시장이 고추장을 맛본 뒤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며 기뻐하던 장면을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부각과 두부 요리는 '고급 K-스낵'으로 통하고, 가죽나물과 제피 같은 재료는 낯설지만 독창적인 허브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일본과 중국 체험객들은 한국 사찰음식 특유의 강인한 에너지와 발효의 깊이에 매료된다고 한다.

김정희 사찰음식 팀장이 만든 사찰음식 한 상. 동화사
김정희 사찰음식 팀장이 만든 사찰음식 한 상. 동화사
김정희 사찰음식 팀장이 만든 사찰음식 한 상. 동화사
김정희 사찰음식 팀장이 만든 사찰음식 한 상. 동화사

김 팀장은 사찰음식을 불교적 수행의 맥락에서도 설명한다. 만드는 과정은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보시이고, 먹는 과정은 햇살과 바람, 농부의 땀방울에 감사하는 관찰의 명상이다. 음식 한 톨 남기지 않는 발우공양은 자신을 낮추는 하심이자 환경을 살리는 에코 수행으로 이어진다.

그는 "사찰음식 열풍이 반짝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환경을 생각하는 소박한 밥상, 생명에 대한 감사가 일상의 감각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며 "사찰음식이 떡볶이처럼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된다면, 그 자체로 사회는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화사가 그 변화의 '따뜻한 쉼표'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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