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조 피해' 영남권 산불, 지휘체계·장비·인력 개혁 절실

산림청·소방청·지자체 헬기 따로 운용…운항시간 제한과 노후화까지
70대 진화인력·임차 헬기 의존…지역 재정력 따라 산불 대응력 갈려
"지휘체계 일원화 시급"…산불 대응, 소방 중심으로 바꿔야

산불 화재시 진화장비나 인력이 산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산불 화재시 진화장비나 인력이 산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임도'를 개설하는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2일 경북 의성군 괴산리 한 야산에 임도가 건설돼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 3월, 경북 북부지역 등 영남권 대형산불은 막대한 재산피해를 남겼다. 주택과 농작물, 산림, 가축, 국가 유산까지 불에 타며 지역사회 전체를 뒤흔든 재난이었다. 문제는 대형산불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으며, 산불 원인이 입산자 실화와 쓰레기 소각 등 예측 가능한 '인재(人災)'에 가깝다는 점이다.

산불 대응 체계는 여전히 산림청·소방청·지자체로 분산돼 있고, 지휘권은 규모에 따라 달라 현장에서 혼선을 일으킨다. 대부분 단기 계약직인 진화 인력은 고령화됐고, 야간운항이 불가능한 임차 헬기에 의존하고 있다. 전문성과 기동력을 갖춘 기관 중심의 지휘체계 개편과 헬기 운용 통합, 인력 전문화 등 체계 전반에 걸친 개혁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25년 영남권 산불 피해 현황.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국회입법조사처 제공
2025년 영남권 산불 피해 현황.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국회입법조사처 제공

◆"1조 넘는 피해, 예고된 반복"…기능보다 복잡한 지휘체계

국회입법조사처가 27일 발표한 '산불 대응 및 지휘체계의 현황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2025년 3월 영남권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대형산불은 단일 사건으로는 역대 최악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초래했다. 사망자 27명, 부상자 156명 등 총 183명의 인명피해, 주택 3천848동, 공공시설과 농림축산업 전반에 걸친 피해액 약 1조818억 원에 이른다.

이 같은 재난은 전례 없는 사건이라기보다는 예고된 반복이었다. 최근 10년간 100㏊ 이상 대형산불이 32건 발생했고, 특히 2022년에는 11건, 2023년에는 8건이 집중적으로 봄철(2~5월)에 발생했다. 발생 원인의 31.4%는 입산자 실화이며, 쓰레기 소각과 농업부산물 소각 등 인재에 의한 산불이 대부분이었다.

현행 산불 지휘체계는 산림청, 소방청, 지방자치단체로 삼분화돼 있다. 중·소형 산불은 기초자치단체장이나 국유림관리소장이, 대형산불은 시·도지사가, 초대형 산불은 산림청장이 지휘권을 행사한다. 문제는 산불이 '진화 규모'에 따라 지휘권이 전환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지휘체계 이관 시점의 혼선과 지연은 초기 진화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산림청이 주관기관인 상황에서, 화재·구조·구급에 특화된 소방청은 법적 지휘권이 없어 '지원 부처'로만 활동한다. 정작 산불이 마을로 번지고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누가 총지휘자인지 모호해지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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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산림청'소방청'지방자치단체 헬기 보유 현황

◆장비는 20년 전 헬기, 인력은 70대…현장 역량의 한계

진화 장비의 현황도 심각하다. 산림청 보유 헬기 50대 중 44대가 기령 20년 이상이며,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81대의 임차 헬기 중 91%에 해당하는 74대가 노후 기종이다. 특히 지자체 헬기는 대부분 담수량이 적은 중·소형이고, 야간운항이 어렵다. 조종사 단독 탑승 운항 구조도 안전성 면에서 큰 문제로 지적된다.

산림청의 야간운항 가능 헬기는 수리온 3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항공안전법상 야간 비행 제한 규정에 따라 산불 현장에서는 '주간에 지형을 숙지한 경우에만' 야간 비행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는다. 결국 야간 산불은 속수무책인 구조인 것이다..

진화 인력 또한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지자체 산불 전문예방진화대 평균 연령은 70세, 이들은 대부분 기간제 근로자로 6개월 계약으로 운영되며 연간 10시간 정도의 교육만 이수한다. 정규직 전환이 일부 추진되고 있으나 규모는 제한적이다.

1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한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이 산불에 쑥대밭이 된 주택과 교회 건물 등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한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이 산불에 쑥대밭이 된 주택과 교회 건물 등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헬기 운용은 제각각, 자치단체 재정 따라 '불평등 대응'

산불 대응의 또 다른 문제는 기관별 헬기 운용 체계의 중복과 분산이다. 산림청, 소방청,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헬기를 보유하거나 임차해 사용하며, 정비 규정과 조종사 교육, 운영기준 등도 제각각이다. 정비 품질과 운영 효율성의 격차가 크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헬기 임차 자체가 어려워, 헬기 투입 타이밍이 늦거나 수량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임차 헬기는 대부분 봄·가을철 산불 조심기간(180일 내외)에만 계약되며, 남은 기간에는 헬기 운용이 사실상 중단된다. 이는 지역 간 산불 대응력의 불평등을 발생할 우려가 있다.

대구 남구는 지난달 31일 앞산에서 발생한 산불의 원인 규명을 위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고 산림 전역을 폐쇄 조치했다고 밝혔다. 남구청 제공
대구 남구는 지난달 31일 앞산에서 발생한 산불의 원인 규명을 위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고 산림 전역을 폐쇄 조치했다고 밝혔다. 남구청 제공

◆지휘체계 일원화와 헬기 운용체계 개선

입법조사처는 '소방청 중심' 구조로 전환하는 등 지휘체계 일원화를 제안했다. 재난 대응 전문성과 전국 단위 동원 능력을 갖춘 소방청을 중심축으로 한 통합 지휘체계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소방청이 주도하고, 산림청은 헬기 운용과 항공 지원에 집중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불 진화 헬기는 '통합운용체계'의 도입이 시급하다. 기관별로 분산된 헬기 자산을 통합 운영하면 헬기 배치의 중복을 방지하고, 지역별 산불 위험도에 따라 최적 배치가 가능하다. 또한 헬기 구입·정비·조종사 교육 등 모든 과정에서 비용 절감과 품질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기간제와 고령자 위주로 구성된 진화 인력을 공무직 중심으로 전환하고, 계절이 아닌 상시 배치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 더불어 소방청과 산림청이 공동으로 훈련과 기술 교육을 실시하고, 체계적인 전문 진화인력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제안했다.

배재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산불 대응에 있어 재난 대응 역량과 전문성을 가진 기관을 중심으로 관련 기관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고 조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현장 지휘체계와 통합지휘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헬기를 통합해 운용할 경우 산불 발생 시뿐만 아니라 대형 화재, 선박 화재, 원자력발전소 화재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대형 재난 발생 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산불 화재시 진화장비나 인력이 산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산불 화재시 진화장비나 인력이 산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임도'를 개설하는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2일 경북 의성군 괴산리 한 야산에 임도가 건설돼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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