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군사훈련 축소 등 일방적 양보는 남북 관계 개선 아닌 안보 자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다음 달 예정된 한미 연합 연습을 조정하는 방안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부터 대북 전단 살포 통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대북 라디오·TV 방송 중단, 북한 만화·영화 등 콘텐츠 국내 유통 허용 검토 등 대북 유화정책(宥和政策)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를 통해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다"고 밝히는 등 강경 입장을 고수하자 더 유화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북한은 작년 8월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레일과 침목(枕木)을 제거했고, 10월에는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도로를 폭파해 남북 육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육로 연결은 우리 정부가 현물 차관(약 1천800억원)을 북한에 제공한 사업이다. 우리 자산(資産)을 멋대로 파괴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은 2020년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도 폭파했다. 이 역시 우리 국민 세금 447억원이 들어간 건물이다.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노딜' 이후에 북한 김정은은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쁘다"며 금강산 관광 지역 내 우리 측 자산(해금강 호텔, 이산가족 면회소, 골프장 숙소, 온천 빌리지 등)을 무단 철거했다. 또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에 우리 측이 항의하며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선언하자 북한은 우리 측 자산을 전면 동결(凍結)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역시 북핵 해결에 실패했다. 단기적 관계에 일부 성과를 냈지만,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북한은 핵 개발을 지속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DMZ 내 감시초소(GP) 철수, 군사훈련 제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대북전단금지법 제정, 남북 정상회담 개최, 9·19 군사합의 체결, 전방 부대 해체 또는 통합 등 유화적 접근을 시도했지만, 북한은 이후 GP 복원과 9·19 합의 파기 등 도발을 계속했고, 실질적 비핵화나 관계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은 정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북 유화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북한은 한 번도 우리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철회한 바 없다. 공비 침투, 테러, 납치, 공공기관 해킹, 핵과 미사일 위협 등 끝없이 우리를 위협했다. 급기야 2023년 12월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 인민회의에서는 남북은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니며 적대적(敵對的)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했으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2월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戰政-전쟁 정책 또는 군사 전략)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평화와 신뢰를 회복하고, 남북 통일로 나아가자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대화의 조건을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약속과 합의를 자신들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마음대로 파기해 왔다. 북한의 선의(善意)에 의존하는 대북 정책은 실패를 거듭했고 일방적 유화정책은 북한의 핵무장에 시간을 벌어 주었으며 우리 안보를 위태롭게 했을 뿐이다.

북한과 대화하고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일방적 유화정책으로 평화와 신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유화정책을 실시하더라도 북한 인권, 핵과 미사일, 대남 적대 정책 등과 연계해 단계별로 접근해야 한다. 양보하고, 퍼 주고, 더 강한 요구에 응하는 방식으로 북한과 관계 개선에 집착(執着)한다면 동맹을 잃고, 우방을 잃고, 결국 대한민국의 설 자리를 잃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일방적 양보는 남북 평화 진전이 아니라 '안보 자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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