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발등의 불 '관세 폭탄' 대란 속에 보이지 않는 대통령

미국의 25% 상호 관세 부과 시한(8월 1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운(國運)이 걸린 관세 협상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인 이재명 대통령이 무책임하게 사라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다급함은 협상 대표단의 당황스러운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24일 워싱턴 D.C.에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1차 협상(協商)을 가진 뒤, 25일 뉴욕 자택으로 찾아가 2차 협상을 가졌고, 러트닉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해 26일 3박 4일 일정으로 스코틀랜드로 떠나자 또다시 뒤따라 쫓았다.

러트닉 장관은 "한국인들이 나와 무역대표부 대표를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왔다"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회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장관 일행이 미국으로 돌아가면 한국 협상 대표단도 미국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는 자동차·반도체 등의 미국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규모는 한국의 약 2.15배에 달하지만,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는 한국 660억달러(약 91조800억원·세계 8위), 일본 685억달러(약 94조5천300억원)로 비슷하다. 한국 경제가 일본보다 훨씬 더 미국 의존도(依存度)가 높은 셈이다.

이 때문에 만약에 일본과 EU(유럽연합)의 대미 상호 관세가 15%로 합의된 상황에서, 다음 달 1일 한국의 대미 상호 관세가 25% 그대로 적용(適用)될 경우 자동차·반도체 등 한국의 수출품은 가격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자칫 한국 경제 전체가 마비(痲痹)될 수도 있는 엄청난 충격이 예고(豫告)되고 있다.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서 지난 25, 26일 대통령실은 긴급 통상 대책 회의를 열었지만 각각 비서실장과 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이 주재(主宰)했을 뿐 이 대통령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5일에는 부산 타운홀 미팅에 참석했고, 26일에는 공개 일정이 아예 없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수시로 (한미 관세 협상) 관련 회의를 열고 보고도 실시간으로 받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협상이 잘못될 경우를 우려해 비겁하게 최대 현안을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혹(疑惑)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 대통령의 침묵이 '협상 전략'이라는 분석은 설득력이 약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협상 기본이 '톱-다운' 방식인 만큼, 각국 정상들의 적극적 노력(努力)이 관세 협상 타결의 원동력이었던 탓이다. 이 때문에 관세 협상 실패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회피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대통령은 국정의 최종·최고 책임자이다. 아무리 "내가 안 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국운이 달린 협상의 결과에 따른 궁극적 책임(責任)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 대통령은 더 이상 숨을 시간이 없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