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9일 낮,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낯선 옷차림의 열일곱 소녀가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아파트 주변 초등학교 인근을 맴돌았다. 김모(당시 17세)양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6년,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공부보다 더 몰입했던 것은 가상의 폭력과 살인 이야기였다. 김 양이 온라인에서 만난 이는 재수생이던 박모(당시 19세)양이었다. 둘은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가상의 마피아 역할극을 통해 친분을 쌓았고, 김 양은 그 안에서 조직원, 박 양은 부두목 역할이었다.
이들은 통화를 이어가며 때때로 살인에 관련된 허구적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박 양은 사람의 손가락이나 폐 같은 신체 일부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그 허구의 살인극은 점차 현실로 스며들었다. 김 양은 이 허구의 '사냥'을 실제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범행 전날 밤, 김 양은 '완전 범죄', '밀실 살인사건', '뼈가루', '화장 유골 바다에 뿌리는 행위 불법 여부' 등을 검색하며 시나리오를 다듬었다.
범행 당일, 김 양 어머니의 옷과 선글라스를 껴 입고 CCTV에 찍혀도 알아보지 못하게 꾸몄다. 캐리어까지 끌고 낯선 여행객처럼 위장했다. 그리고 '사냥을 나간다'는 메시지를 박 양에게 보내며 변장 사진을 찍어 보냈다. 박 양은 "옷 예쁘게 입었네, 화려하네"라고 답했다.
김 양은 범행 대상이 될 아이들을 바라보며 박 양과 통화했다. "우리 집 아파트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인다"고 하자, 박 양은 "그럼 저 중에 한 명이 죽게 되겠네, 불쌍해라"라고 답했다. 김 양은 점심 무렵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
그날 낮 12시 44분경, 운동장 근처에서 하굣길에 있던 7살 A양이 다가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휴대폰 좀 빌려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김 양은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됐다며 A양을 집으로 데리고 가면 전화를 쓸 수 있다고 거짓말했다. 엘리베이터 CCTV에는 A양이 책을 품에 꼭 안고 김 양의 뒤를 따르는 모습이 담겼다.

김 양은 집으로 들어와 A양에게 고양이와 함께 놀게 만든 후 그 틈에 살해했다. 그 순간에도 김 양은 PC방에 있던 박 양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잡아왔어' '상황이 좋았어' '집에서 전화를 쓰게 해주겠다며 데리고 왔어'라는 내용이었다. 박 양은 '살아있어?', 'CCTV는 확인했어?'라고 물었고, 김 양은 '아직 살아 있어'라고 답했다. 박 양은 '손가락 예뻐?'라고 물었고, 김 양은 '예쁘다'라고 답했다.
김 양은 A양의 사체를 훼손했다. 이 과정에서 김 양은 피로와 공포로 불안정해져 박 양에게 '형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박 양은 "침착해라"라고 다독였다. 이후 김 양은 사체를 쓰레기봉투에 나눠 담아 옥상 물탱크 건물 위에 버렸다.
손가락 등 사체 일부는 따로 챙겼다. 그날 오후 5시 44분, 김 양 지하철로 서울 홍대입구역에 도착해 박 양을 만나 사체 일부가 담긴 종이봉투를 건넸다. 박 양은 화장실에서 직접 봉투를 열어 이를 확인했다. 박 양은 김 양으로부터 "손가락 예쁘지?"라는 질문을 받고서는 "예쁘더라"라고 말했다.
둘은 그 길로 술집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룸카페로 자리를 옮겨 시간을 보냈다. 김 양은 룸카페에서 잠이 들었고, 박 양은 캐릭터 이미지를 다운로드 받으며 앉아 있었다. 열일곱 살 소녀는 현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도, 마치 온라인 게임의 한 장면처럼 차분했다.
◇유족의 애끓는 호소문... 주범 김양, 징역 20년 확정
당시 A양의 어머니는 온라인커뮤니티를 통해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주고 힘이 돼 주던 아이를 잃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라며 "가해자들에게 더욱 엄격한 처벌이 내려지길 바란다"는 호소문을 올렸다.
어머니는 "사건의 가해자들은 12명이나 되는 변호인단을 꾸려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8살밖에 되지 않은 꽃 같은 아이를 '사냥하자'는 말로 공모해 사건을 계획했을 뿐 아니라 무참히 살해하고 훼손하고 유기했다"고 했다.
이어 "가해자는 여러 가지 정신과적 소견으로 형량을 줄이려 하고 있다. 자칫 그들의 형량이 줄어들어 사회에 복귀하게 되면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는다"며 "충분히 죗값을 치르고 본인들의 잘못을 반성하게 하려면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건 당시 김양은 이미 조현병과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범죄심리학자들은 "범행은 조현병 환자의 충동적 범죄와 달리 지나치게 치밀했다"며 해리성 장애나 사이코패스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김양은 재판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살아 있겠느냐. 못 견디겠다. 항소심에서는 사형을 내려달라"고 했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결국 소년법이 적용됐다. 소년법상 만 18세 미만 법정 최고형은 징역 20년형이다.
2018년 9월, 대법원은 김양에게 징역 20년과 전자발찌 30년 부착을, 범행을 방조한 공범 박 양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김 양은 만기 출소하면 오는 2037년 3월 30일에, 박 양은 2030년 4월 12일에 출소하게 된다.
댓글 많은 뉴스
정동영 "대북 민간접촉 전면 허용…제한지침 폐지"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60%선 붕괴…20대 부정 평가 높아
李대통령, 과한 수사 제동…李경북도지사 첫 사례 되나
이재명 "말 안하니 진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치아도 흔들려"…관세협상 침묵 이유 밝혔다
트럼프 "한국 3천500억달러 투자…상호관세 25%→15%"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