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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 어렵다보니 '주민발안제' 실적은 초라…"기준 완화 필요"

청구하려면 1만3천명 서명 받아야
실제 추진 사례, 대부분 시민단체가 주도… 개인은 사실상 불가능
주민·시민단체 완화 요구에도 실제 개정은 어려울 듯

대구시의회 전경. 매일신문DB
대구시의회 전경. 매일신문DB

대구에서 주민이 직접 조례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주민조례발안제를 활용한 사례가 지난 3년 사이 2건 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발안을 위해 채워야 하는 연대서명 기준이 다른 지자체보다 높은 탓에 조직을 갖춘 시민단체가 아닌 일반 시민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구 적은데 필요 인원은 더 많아…높은 허들에 정책 활용 어려워

20일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에서 주민조례발안제가 의회에 올라간 사례는 2022년 이후 2건이 전부다. 9개 구군에서 나온 조례안은 한 건도 없었다.

주민조례발안은 주민이 직접 조례를 만들거나, 조례 폐지와 수정을 제안할 수 있는 제도다. 일정 수 이상의 주민을 모아 연대서명을 받은 조례안이 의회 상임위원회에서 검토를 거친 후 본회의에 상정되는 식이다.

제도 활용이 저조한 이유로는 발안에 필요한 연대서명 기준이 꼽힌다. 대구시의회에 조례를 발안하기 위해서는 6개월 이내에 청구권을 가진 대구 205만495명 중 1/150인 1만3천670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인천(1/200), 경기(1/350), 제주(1/550)와 비교하면 기준선이 높다.

구군의 경우 여건은 더욱 열악하다. 서명을 받아야 하는 기준도 3개월로 짧은 데다가, 인구 규모에 따라 필요 서명인 조건이 제각각이어서다. 대구 북구와 수성구의 필요 연대 서명자는 인구의 1/70인 5천132명, 4천937명이다. 인구가 50만 이상이라 1/100 기준을 적용하는 달서구(4천669명)보다 오히려 많은 서명이 필요한 셈이다.

◆활용 어렵다보니 청구사례 시민단체에 집중…"기준 완화 필요"

주민조례발안제를 활용한 사례는 시민단체에 집중됐다. 연대서명 기준이 워낙 높다보니 일반 시민보다는 조직을 갖춘 시민단체 손에서 정책 제안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2022년 이후 대구에서 나온 주민조례발안 사례 2건은 박정희기념조례 폐지, 학급담당교원 교육연구비용 지급 조례다. 둘 모두 시민단체 기획에서 나왔다.

이마저도 기준이 너무 높다 보니 시민단체조차 발안을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일반 주민 참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공공기관이 언론에 건네는 광고비 규모와 집행 기준을 공개하는 조례를 만들고자 했다. 필요 인원이 상당하고 실명으로 일일이 서명을 받아야 해서, 성명문 발표 등 다른 방법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 역시 "시민단체도 조례 제안이 쉽지 않은 마당에, 개인이 현 기준에 맞는 인원을 모아 조례를 발안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청구 인원을 1만 명 이하로 낮추고, 청구 기간도 6개월 이상으로 늘려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구 북구의회의 경우, 지난해 12월 누리집을 통해 주민조례발안 기준을 완화해달라는 요청을 접수했다. 주민 A씨는 "북구는 청구인 수를 완화하지 않고, 법이 허용하는 최소 기준만 유지하고 있다"며 "제도 취지를 살리려면 발안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만 대구시의회와 각 구군은 개정 가능성을 일축했다. 대구시의회 관계자는 "현재까지 주민 조례 발안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을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주민 요구를 접수했던 북구의회 역시 "조례 기준을 크게 완화했을 때 같은 조례가 여러 번 접수되거나, 조례가 남발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다른 구군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해, 청구 인원을 줄일 계획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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