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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진위 여성가산점의 기원... 배우 김여진 주도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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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 지지 TV찬조 연설을 하고 있는 배우 김여진. 유튜브
2012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 지지 TV찬조 연설을 하고 있는 배우 김여진. 유튜브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정부지원사업 '여성 가산점' 제도를 윤석열 정부의 폐지 권고를 받았는데도 최근까지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애초 여성 가산점으로 현행의 2배인 총 10점이 의결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주도한 건 당시 영진위원이자 영진위 산하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장이었던 배우 김여진(53)이었다.

​8일 매일신문이 입수한 '2020년 제22차 영진위 정기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2020년 11월 영진위는 산하 성평등소위가 올린 '성평등 관점 영화진흥사업 시행계획안'을 토대로 여성 가산점 시행을 의결했다. 영진위의 정부 지원 사업에 여성가산점 적용이 최초 결정된 순간이었다.

성평등소위가 의결을 요청한 건 감독과 제1주연, 프로듀서, 작가 등 지원사업 핵심창작자의 50% 이상이 여성으로 이뤄진 프로젝트가 영진위 지원 대상의 50% 이상이 되도록 사업 평가 시 성평등 평가 항목을 추가해 10점 가산점을 주자는 내용이었다. 성평등소위가 첨부한 보고서는 그동안 한국영화는 여성 인력의 심각한 과소 대표성 문제가 있었고 이는 한국 영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한국영화계는 여성 이야기를 한국 영화로 보고 싶다는 관객의 당연한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고 여성 가산점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를 주도한 건 배우 김여진이었다. 회의록을 보면 김여진은 "영진위 공적 목적에 성평등이라는 지향은 아주 크게 들어가야 된다는 게 현시점의 문제의식"이라며 "현재 (한국영화) 스태프 가운데 키 스태프(Key Staff)는 거의 60%~70% 가까이 남성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다양성, 성평등성, 예술성, 독창성은 분명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며 제안 사유를 밝혔다.

김여진은 "성평등이라는 게 왜 꼭 양적으로만 계량이 돼야 하느냐, 어떤 가치로 모색이 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여성이 보면 그렇지 않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성이 들어가서 남성들과 똑같이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인원이 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진위 내부에선 "지원 사업의 당락이 1점~2점 차이로 결정되는데 여성가산점 10점은 과하다" "특히 독립영화에서 여성가산점 10점은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 이에 김여진은 "여자 주인공, 여성 감독, 여성 작가, 여성 프로듀서가 만든 영화가 10점을 먼저 얻어서 우위에 선다는 게 왜 안 되나?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건 매우 높이 평가해야 되고 그건 영진위가 나아갈 방향, 성평등을 지향하면서 전체 독립영화인 중 50%를 여자로 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거라고 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논란이 되더라도) 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채점 항목으로) 무슨 항목이 있고 그게 어떤 기준으로 점수화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이에 대해 다 검토하고 '모든 것이 정당한가' '다른 부작용은 없는가' '반발은 없는가'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면 왜 안 되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여성 가산점 제도 시행 전 평가 항목엔 보통 성별과 상관 없는 작품의 명확성, 참신성, 완결성, 발전가능성 등이 들어갔다.

김여진은 '영화인과의 간담회에서도 좋은 반응이 나왔다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회의를 주도했다. 그는 "성평등소위에서 이 문제를 2년 동안 논의해 왔다. 노이즈가 있을 수 있다. 사무국에서 간담회를 요청하셔서 저희가 했던 것"이라며 "간담회에 40명 가까이 왔다. 독립영화협회, 전국피디협회, 시나리오협회, 작가들, 심지어 산업노조에서도 왔다. 그분들 모두 이 안에 대해 '너무 약하다'고 했다. 저희가 너무 놀랐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소극적이었고 눈치를 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반발이 나올 것 같다는 분은 단 한 분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간담회에 참여했던 한 영화인이 설명하는 상황은 김여진의 설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작가는 "그 간담회는 완전 여성 위주의 이야기만 가득한 간담회였다"며 "그런 분위기에서 남자 1명이 총대를 메고 '그건 잘못됐다'고 말하면 매장되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그런 데에서 나온 반응을 가지고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말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고 했다.

영진위 사무국은 성평등소위의 안에 대해 여러 차례 반대 의견을 내고 안을 위원회로 올리는 것을 보류해 왔다. 하지만 이날 김여진은 "(사무국의 이런 행위는) 사보타주(Sabotage)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위원장을 압박할 정도로 강행 의견을 보였고 결국 이 안은 의결 처리 됐다. 다만 사무국과 조율하는 과정에서 여성가산점은 최종 5점으로 확정됐다.

김여진 주도로 시행된 여성 가산점 제도는 역차별 논란이 빚어졌다. 2021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평점을 분석한 결과 남성 작가 4명은 여성가산점 제도가 없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1인당 상금 700만원씩도 손해를 봤다. 수상작 15편 가운데 11편이 여성 가산점 대상이었다.

논란이 지속되자 2022년 윤석열 정부는 영진위에 여성 가산점 폐지 취지의 제도 개선 권고를 했다. 영진위는 여성 가산점을 주던 정부 지원 사업 8개 가운데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 한해 여성 가산점 대신 '다양성 가산점'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다양성 가산점이란 여성을 비롯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퀴어+(LGBTQ+), 지역, 연령, 계급, 장애 등 과소대표된 집단의 이야기가 작품에 반영되면 추가 점수를 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허울뿐인 변화였다. 다양성 점수를 많이 받은 작품 대부분이 여성 서사이거나 주인공 등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다양성 가산점으로 위장한 여성 가산점'이었다.

역차별도 계속됐다. 2024~2025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작 분석 결과 다양성 점수를 제외하면 순위가 줄줄이 바뀌었고 바뀐 순위 탓에 누군가는 최대 1천725만원을 적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는 이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한 것에 대한 입장을 들으려 ​2022년 김여진에게 연락을 취한 바 있었다. 김여진은 "내 번호 어떻게 알았냐"며 "이 건에 대해서 취재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기자 성별은 남성이었다.

올해엔 여기자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아 긴 설명을 내놨다.

김여진은 "그 제도는 내가 추진한 게 아니다. 내가 영진위원이 되기 이전부터 꽤 오랫동안 연구가 되던 것"이라며 "이 제도 실제 목표는 가산점을 주는 것 자체가 아니었다. 감독과 작가, 촬영감독, 프로듀서 등 메인 스태프 4명 가운데 2명 이상이 여성이 되도록 하자는 게 성평등소위 의견이었다. 그때 당시에 영국이나 호주 등 영미권에서도 그런 제도들이 많이들 시행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이 반이다.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사람도 여성, 남성이 반반이다. 근데 실제 여성은 경력단절 문제 때문에 메인 스태프의 여성 비율은 굉장히 적다. 여성 가산점으로 기틀이 마련되면 경력 단절이 된 여성 스태프가 돌아올 수 있는 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며 "상업영화를 대상으로 하자는 게 아니었다. 지원금을 받거나 독립 영화를 말하는 거였다"고 했다.

김여진은 "성평등소위원장이 된 것도 내가 지원을 한 게 아니었다. 당시 공석이었고 모든 이가 나를 추천해서 맡았던 거다. 내 직무가 성평등소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시켜서 한 거고 자리에 있는 역할을 한 것 뿐이었다. 절차상 필요한 역할을 한 것뿐"이라며 "성평등소위 대부분은 당연히 여성운동 쪽을 하시는 분들이었다. 이분들이 여성 가산점 안을 상위 위원회로 올렸는데 부결됐었다. 그래서 공청회를 했다. 공청회에서 '꼭 여성 가산점이 아니더라도 장애인이라든가 인종, 다문화 가정 등에 대한 가산점 제도도 마련될 수 있지 않겠느냐' '여러 가지 다양성을 추구해 보자'는 의견까지도 나왔었다. 그 결과를 상위 위원회 의결에 올렸다. 위원회에서 투표로 결정된 것이다. 문제가 있었으면 부결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내가 했던 역할은 그 전부터 논의가 돼 있던 걸 절차를 마련해서 제대로 투표에 부치는 것까지였다. 문제가 있다면 절차를 거쳐서 폐기하면 된다. 영진위에서 해결하면 되는데 나한테 화살이 날아오는지 잘 모르겠다"며 "역차별이라든가 그런 논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렇거나 제대로 조사를 한 뒤 표결을 해서 폐기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목표가 초과 달성됐다면 폐기해도 될 것"이라고 했다.

김여진은 1차 인터뷰를 끝낸 뒤 다시 여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기사는 다른 분이 쓰시냐. 그 기자 분이 어떻게 짜깁기를 해서 쓰실 지를 내가 사실 못 믿겠다. 만약 왜곡되거나 내가 말했던 중요한 부분이 안 들어가면 내가 아는 다른 기자를 찾아서 '어떤 기자가 기사를 왜곡했다'고 인터뷰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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