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래수회 핍귀풍재(山來水回 逼貴豊財) : 산이 내려오고 물이 돌아들면 귀함이 빨리 다가오고 재물이 풍족해진다." 풍수지리의 고전 '청오경(靑烏經)'에 나오는 말이다. '청오경'의 핵심 구절이다. 지맥은 힘차게 내려오고, 하천은 돌고 돌면서 흘러야 한다는 것.
영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럼, 영남의 시작은 어디인가. 산은 강원도 태백시 구봉산(九峯山).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낙동정맥의 출발점이다. 물은 구봉산의 삼수령(三水嶺).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다. 이곳에 떨어진 빗물의 일부는 한강을 따라 서해로 흘러간다. 다른 일부는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흘러간다. 나머지 일부는 오십천 줄기를 타고 동해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 고향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는 어떠한가. 먼저 산을 보자. 생가 뒷산 청량산(淸凉山, 869.7m)은 구봉산(902.2m)에서 시작한다. 구봉산은 낙동정맥을 따라 우보산(933.6m)·백병산(白屛山,태백/1260.5m)·면산(1,245.2m)·묘봉(1,168.9m)·백병산(白餠山,봉화/1,153.7m)·진조산(908.4m)까지 힘차게 달리다가 서쪽으로 향한다. 황악산(820.1m)·죽미산(908.2m)·제비산(917.2m)·미림산(702.5m)·문명산(893m) 등 12개 산을 거쳐 구불구불 내려와 청량산에 도착한다. 그리고 낙동정맥의 주맥은 진조산에서 통고산·주왕산·가지산을 거쳐 부산 금정산까지 달린다.
청량산은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한국 3대 기산(奇山) 중 하나다. 경치가 그만큼 빼어나다. 주차장에 도착해 기암절벽의 산을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외장인봉·선학봉·자란봉·자소봉·탁필봉·연적봉·연화봉·향로봉·경일봉·금탑봉·축융봉 등 12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다. '12산-12봉우리', 절묘한 형국이다.
물의 경우 삼수령과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굽이굽이 휘감아 돈다. 우리나라 강 중에서 낙동강 상류처럼 헤아릴 수 없이 휘감아 도는 강도 없다.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예천의 회룡포는 그 일부분에 불과하다. 물론 남한에선 가장 긴 강(521km)이다.
조선시대 풍기 군수를 지낸 주세붕(周世鵬)은 '청량산록(淸凉山錄)'에서 "단정하면서도 엄숙하고 밝으면서도 깨끗하여, 비록 작기는 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청량산"이라고 찬탄했다. 이황(李滉)은 거의 매일 청량산에 올라 스스로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고 했다. 원효 대사가 창건한 청량사, 서성(書聖)으로 칭송받는 김생(金生)이 수도했던 '김생굴', 최치원(崔致遠)이 수도한 풍혈대 등이 있다. 특히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 공민왕당(恭愍王堂), 청량산성도 있다.
청량산과 낙동강 상류의 풍수 형세라면 한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힐만하다. 청오경의 말마따나 귀함과 재물이 넘쳐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불굴의 기운마저 담겨 있다. 낙동정맥과 낙동강에 있는 '대구·부산·울산'이 수도권을 제외하면 가장 큰 도시다. 창원·포항·통영·거제의 경제력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퇴계 선생의 명성이 갈수록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점을 생각할 때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솔직히 영남인들은 그동안 이재명 대통령을 과소평가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의 불우한 어린 시절 삶을 폄하(貶下)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 대통령이 평소 시원하게 말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것은 청량음료의 사이다를 연상시킨다. 어찌 청량산과 무관하겠는가.
보수다 진보다 하는 이념이 시대는 지났다. 실용의 시대, AI시대가 도래했다. 동시에 영남의 철학이 'K-철학'으로 비상해 세계의 철학을 선도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재명 시대'를 잘 활용해야 한다. 공장이나 유치해 인구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이 아닌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게 아니라 3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대이니, 이재명 5년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본다.
'K-철학'의 인재 양성, 정신문화 창달, 낙동정맥과 낙동강 원형 복구와 보존, 북극항로 시대 준비 등 '새로운 영남 100년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 유산만을 고수하다가 30년을 잃어버린 영남. 왜 그 좋은 여건에서 '박정희 시대'를 제대로 업그레이드하지 못했는가. 늦지 않았다.
소위 '윤어게인(Yoon Again)'은 철학의 빈곤, 인재의 빈곤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구호만으로는 영남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여전히 인물을 논하자면 영남이 제일이다. '山來水回 영남'은 여전히 살아 있다.
조한규(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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