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상풍력 산업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해상풍력 발전단가(LCOE)를 150원/㎾h 이하로 낮추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었지만, 정작 그 목표를 달성할 핵심 장비인 WTIV(해상풍력 설치 선박) 도입 전략에 치명적인 '한국형 리스크'가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한국 서남해안의 '연약지반' 문제 때문이다.
유럽, 특히 해상풍력 강국들이 주력하는 북해 지역은 해저 지반이 단단한 경우가 많아 초대형 WTIV가 안정적으로 작업을 수행하기 좋다. 하지만 우리의 서해와 남해는 진흙과 뻘이 뒤섞인 푸딩처럼 무른 지반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다. 이 특수한 환경을 무시하고 유럽에서 검증되었다는 이유로 WTIV를 그대로 들여오는 것은 '한국 해상풍력 목표를 연약지반이라는 모래성에 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연약지반의 어려움은 이미 현장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서남해 지역 해상풍력 현장에 투입된 10㎿급 국내 WTIV인 현대프론티어호를 보자. 이 선박은 무른 지반에 대비해 지지대 발(스퍼드캔) 밑에 지름 17m에 달하는 거대한 머드매트(Mudmat·흙받이)까지 부착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선박의 무게를 지반에 분산시켜 안정화하는 프리로딩(Pre-loading) 과정에서 지지대가 계속해서 해저 깊이 빠지는 침하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터빈 한 기를 설치하는 데 한 달 가까이 걸리는 심각한 공기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설치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은 곧 '시간=비용'이라는 공식에 따라 건설 비용이 폭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국내 WTIV로도 이런 문제를 겪는데, 만약 그보다 선체 무게가 두 배 이상 무거운 유럽의 대형 고중량 WTIV가 들어온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선박이 안정적으로 서기 위해서는 지름 32m에 달하는 비현실적인 초대형 머드매트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유럽식 '만능 WTIV'는 한국의 연약지반에서 시간만 잡아먹는 고철 덩어리가 될지도 모른다. 이는 정부의 LCOE 150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이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기술 자립의 기회를 잃는다는 점이다. 현재 도입이 논의되는 외국산 모델은 유럽의 설계와 크레인을 국내에서 단순히 조립 생산하는 방식에 그친다. 핵심 기술이 해외에 종속된 채 부품을 가져와 조립하는 것만으로는 국내 기술 축적을 기대할 수 없으며, 부품 공급의 가격 경쟁력 또한 확보할 수 없다.
우리는 K-방산의 성공 사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K-방산이 중동 사막과 유럽 진흙 지대 등 어떤 혹독한 환경에서도 뛰어난 성능과 가성비를 입증하며 세계 시장을 선도한 비결은 한국만의 독자 기술이 탑재되었기 때문이다.
WTIV는 해상풍력의 '핵미사일'이나 다름없는 핵심 장비다. 한국의 연약지반을 극복할 수 있는 '한국형 K-WTIV'라는 가성비 높은 독자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국내 조선 강국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 해역에 최적화된 설계와 가성비를 갖춘 WTIV를 확보해야 한다. 이는 나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연약지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수출 효자 상품이 될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단순 유럽형 WTIV 도입 전략을 재고하고, 한국 해역 특성에 맞는 KWTIV 개발에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K-해상풍력의 꿈을 연약지반 위에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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