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유출(流出)이 심각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우주항공, 바이오 등 미래 성장을 담보할 첨단 분야 고급 두뇌들이 한국을 떠난다. 심각한 의대 쏠림 현상은 무분별한 증원 정책 탓에 훨씬 심각해졌고, 국내 이공계 인력들은 고액 연봉과 자율성 등을 좇아 글로벌 기업들로 빠져나간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기술 연구 인력은 2024~2028년 약 4만7천 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5년 전(2019~ 2023년) 800명 부족에서 60배가량 급증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AI 인재가 100만, 1천만 명 필요하지만 계속 빠져나간다"고 했다.
스탠퍼드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AI 인재 순유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였다. 유입은커녕 빠져나가서다. AI 패권(霸權) 장악에 나선 미국과 중국 등은 국운을 걸고 인재를 끌어들인다. 사람이 곧 경쟁력이자 미래임을 알기 때문이다. 국내 체류 외국 인재가 100만 명 늘면 국내총생산(GDP) 6%에 해당하는 145조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135만 명인 국내 등록 외국인이 500만 명까지 늘면 361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 저출산·고령화 흐름에 인재 유출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뛰어난 외국 고급 인력을 유입해 생산성과 소비를 동시에 높여야 한다는 말이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R&D(연구개발) 생태계 혁신을 위한 연구 현장 간담회'를 통해 "국내에서 충분히 연구할 만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마련해 줬다면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는 의견을 밝혔다.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은 국내 이공계 석박사 인력의 10%를 차지하는 외국인 연구자의 한국 조기 적응을 위해 생활 적응부터 연구와 경력 개발, 취업 등 전 주기를 지원하는 정착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고 8일 밝혔다. 더불어 2008년 과학기술부가 교육부에 통합되면서 사라졌던 과학기술부총리가 17년 만에 부활한다. 과학기술 R&D 역량 강화를 통해 AI를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담아낸 조직 개편이다. 지난해 3조3천억원에 불과했던 AI 예산도 10조1천억원으로 3배 이상 늘렸다. 과학기술부총리는 내년 역대 최대인 35조3천억원 규모의 R&D 예산 심의·조정 권한을 갖는다. 힘 있는 부처에 밀려 정책 결정권의 한계가 드러났는데, 부총리로 격상되면서 이를 해소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여전히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R&D 예산 35조3천억원 중 기초연구 예산은 전년 대비 15%가량 늘어난 3조4천억원이다. 과학기술부는 지난 5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통해 기초연구 질적 고도화를 위해 R&D 예산 중 기초연구 사업 비중을 10% 이상으로 유지한다고 공언했으나 내년 비중은 9.6%에 불과하다. 비율로만 따지면 올해 9.8%보다 더 줄어든 셈이다. 무엇보다 정책 수준의 대응으로 인재 유출의 물줄기를 바꿀지는 의문이다.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연공서열(年功序列)에 따른 임금체계 등은 배려 차원의 정책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의 우수 학생을 육성해 국내에 체류하게 한다지만 기존 유학생과 연구자들조차 졸업 후 한국을 떠난다. 근본 원인을 바꾸지 못하면 고액 연봉과 주거(住居) 제공도 땜질식 처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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