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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의 예술기행] 오스트리아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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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세계적인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태어나고 거쳐간 역사의 도시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세계적인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태어나고 거쳐간 역사의 도시이다.

◆예술과 사상과 역사의 도시, 빈

1897년 5월 릴케는 운명처럼 14세 연상의 여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만난다. 그녀는 이미 니체, 프로이트를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의 뮤즈로 칭송받던 러시아 태생의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였다. 이후 3년간 불꽃 같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그녀의 소개로 톨스토이를 방문하기도 하며 서로의 작품과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빈(Wien, Vienna)의 한 잡지에 릴케가 '르네'라는 다소 밋밋한 프랑스식 이름을 버리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독일식 이름을 쓰게 되는데, 그녀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릴케가 그녀에게 헌정한 '기도시집'의 제2부이다. 그녀는 릴케뿐만 아니라 니체의 철학과 프로이트가 칼 융과 결별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빈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슈베르트, 요하네스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구스타프 말러,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의 음악가들과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등의 화가들, 이오시프 스탈린, 아돌프 히틀러까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 이름만으로 인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이들이 태어나거나 살았거나 머물거나 스쳐 간 그야말로 예술과 사상과 역사의 용광로 같은 도시였다.

빈 콘서트 홀
빈 콘서트 홀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

빈은 신성로마제국의 주요 도시이자 오스트리아 공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관문 격이었던 이 도시에 대해 또는 위에 열거한 예술가, 사상가, 정치가들에 대해 논할 때는 단언컨대 전 유럽에서 그들을 모여들게 한 합스부르크 왕가를 배제할 수 없다.

부르봉왕가, 메디치가와 더불어 세계 중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합스부르크가의 시작은 놀랍게도 스위스 알프스산맥 언저리에 웅거하던 하비히츠 부르크(매의 성)란 미미한 시골 귀족가문이었다.

그 미미함과 끈기와 지략을 무기로 합스부르크가는 마침내 1519년 카를 5세가 신성 로마 황제가 되어 이탈리아와 그 식민지를 물려받음으로써 유럽과 아메리카의 패자가 되어 중흥기를 맞고 전 유럽왕가와의 근친혼과 그로 인한 유전병,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인한 신성로마제국 해체, 황태자 부부 암살로 촉발된 1차세계대전 등 부침을 겪으며 1918년 카를 1세의 퇴위로 몰락할 때까지 유럽의 역사 600년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이 영욕의 합스부르크가 600년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대단한 표어와 시구가 있는데, 신성 로마 제국 초대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A.E.I.O.U.(Austriae est imperare orbi universo, 오스트리아가 전 지구를 다스린다)'와 '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게 두어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마르스 신이 다른 왕국들에게 선사하는 것을 그대는 베누스 여신이 선사하므로(Bella gerant alii, tu felix austria, nube! Nam quae Mars aliis, dat tibi regna Venus)'이 그것이다.

빈 중심가의 성 슈테판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오스트리아 최고(最古) 성당이다.
빈 중심가의 성 슈테판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오스트리아 최고(最古) 성당이다.
슈테판 대성당 내부
슈테판 대성당 내부

◆한 도시 한 달 살기의 첫 목적지

빈 중심가의 성 슈테판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오스트리아 최고(最古) 성당이다. 기와 23만 개로 이루어진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과 137m 높이 남탑과 67m 높이 북탑이 압권이다. 16세기 조각가 안톤 필그람이 만든 설교단과 지하엔 역대 합스부르크가 사람들의 내장이 들어있는 항아리가 보관되어 있다. 페스트로 사망한 2천여 명의 유골이 쌓인 카타콤베는 인생무상이란 말을 저절로 내뱉게 한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장소인 이곳은 빈 소년합창단으로도 유명하다. 하이든과 슈베르트가 합창단원이었고 베토벤은 반주자였으며 모차르트가 지휘를 맡기도 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35세에 요절한 모차르트의 너무나 초라했던 장례식은 성당 뒤뜰에서 열렸고 남루한 마차에 실려 아무도 따라 들어가지 못한 성 마르크스 공동묘지 그의 무덤은 누구도 알 수 없어 이후 그의 무덤이라 추정되는 곳에 작은 천사상과 표식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 또한 인생무상을 되뇌게 한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호프부르크 왕궁은 13세기말에 건축된 합스부르크 통치자들의 겨울궁전이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호프부르크 왕궁은 13세기말에 건축된 합스부르크 통치자들의 겨울궁전이었다.

현재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호프부르크 왕궁은 13세기말에 건축된 합스부르크 통치자들의 겨울궁전이었다. 보물실에는 합스부르크가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화려하기 짝이 없는 왕관들이 즐비하고, 100만 점 이상의 그랙픽 아트를 비롯한 수집품에는 렘브란트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마리아테레지아가 신동 모짜르트를 부른 여름궁전인 쇤부른왕궁과 함께 엘리자베트 왕비의 애칭인 시시 티켓으로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벨베데르 궁전
벨베데르 궁전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벨베데레 왕궁과 프로이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옛 집들을 개조한 30여 개의 박물관, 14세기 미노리텐키르헤 교회, 마리아암게슈타데 교회, 신(新) 프랑스르네상스풍의 국립 오페라관, 의(擬) 고딕식의 포티페 교회, 신이탈리아르네상스풍의 빈대학교, 신플랑드르고딕식의 라트하우스(시청) 등 그냥 한 달쯤 지내며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 또한 빈이다. 특히 매년 1월 1일 정오, 왈츠를 중심으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빈 콘서트 홀은 새해가 되면 늘 그리운 곳이다.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빈 미술사 박물관은 독일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설계로 자연사 박물관과 마주 보고 있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루벤스의 모피를 두른 엘렌 푸르망, 브뤼헐의 바벨탑, 베르메르의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 벨라스케스의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 틴토레토의 수산나의 목욕 등 거장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 황홀할 지경이다. 꼭 다시 한 번 더 들러 세세하게 왕궁들과 성당 그리고 박물관들을 들러보리라 이 글을 쓰면서 또 다짐한다.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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