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지방의 청년 유출은 구조적 위기로 굳어졌다. 2023년 한 해 동안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은 12만명에 달했다. 경북도 역시 순이동 1만명 감소를 기록하며 '소멸 위험지역'에 편입됐다. 지난해에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인구는 41만8천명에 이르러 위기를 재확인시켰다.
그러나 북부권 거점도시 안동시에선 다른 움직임이 눈에 띈다. 떠나지 않고 남은 청년들이 각자의 창업을 통해 '머물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AI로 설화를 세계로…
국립경국대 한류대학원생인 박민재(26) SG상상공작소 대표는 안동 설화를 11개 언어로 번역한 AI 플랫폼을 개발해 해외 시장에 도전했다. 지난해 일본 도쿄 '콘텐츠도쿄 2025'에 출품한 'AI 로컬 스토리 가이드'는 안동소주 장인과 종갓집 종부, 청년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현지 여행사와 글로벌 플랫폼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안동을 떠나지 않고도 세계 무대에 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며 청년 고용 확대 의지를 밝혔다.
◆안동소주와 청년의 결합
이창우(26)·오준호(24) 우디바 대표는 안동소주에 스토리를 입혔다. '안동 한량', '솥' 같은 칵테일에 '봉제사 접빈객' 정신을 담고, AI 소믈리에 포토카드와 디지털 라벨 체험을 접목했다. "안동소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환대와 자부심이 담긴 문화"라며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구시장에서 막걸리 서사
권순호(24) 순수주조 대표는 구시장에서 프리미엄 양조장을 운영하며 막걸리와 투어를 결합했다. 양조장 시음에서 시작해 상인과 만남, 시장 탐방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통해 '살아있는 시장'을 선보였다. 그는 "아버지 세대의 땀과 이야기를 술 한 병에 담고 싶다"며 상권과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구상한다.
◆창작자들의 허브
권기종(26)은 '㈜시야'를 설립해 청년 창작자들의 협업을 제도화했다. 한옥 카페를 베이스로 콘텐츠 협업을 진행하며 '안동설화 타로카드', '시야 박스' 같은 상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외로운 섬이 되지 않도록 든든한 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길을 연 도전
김정주(25·여) ㈜정주 대표는 피아노 건반과 칵테일을 결합한 체험형 콘텐츠 '목로'를 선보였다. 관광객이 건반을 눌러 자신만의 칵테일을 만드는 방식이다. 경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대학원생 이다영(23·여) 연구원은 술지게미를 활용한 '안동탈 쿠키' 개발 경험을 계기로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금상민(26) 워크리스트 대표는 사찰·캠핑·굿즈를 결합한 '캠플스테이'를 통해 힐링 산업을 제시했다.
이처럼 남아 있기를 택한 8명의 청년은 업종과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머물 이유'를 스스로 만들며 안동판 '로컬 어벤져스'로 불리고 있다.
◆가능성은 증명됐지만, 구조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시도가 곧바로 정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원은 초기뿐, 2년 차 이후 끊긴다", "법률·세무 장벽이 너무 높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전문가들도 "창업만으로는 청년 정착을 담보할 수 없다"며 주거·문화·복지를 포괄하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북부권 중심 안동에 없는 청년센터
현재 경북 북부권 중 영주·예천·의성에는 청년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인구와 자원이 집중된 안동에는 정작 청년센터가 없다. 창업지원센터가 일부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주거와 문화, 복지를 아우르는 종합 청년센터는 부재하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창업 2~5년 차 지원 ▷청년–지역 자산 연결 ▷상시 협업 공간 ▷지자체의 구매자 역할 확대 ▷로컬 펀드 활성화 등을 꼽는다. 이를 담아낼 플랫폼이 곧 청년센터라는 지적이다.
떠난 이를 탓하기보다 남아 가능성을 만드는 이들. "우리는 남아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 올 사람, 함께하자"는 청년들의 외침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지역의 생존 전략이다. 안동의 실험이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도적 기반이다. 그 설계도의 핵심은 청년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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