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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사운드포스트, 마음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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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린 안에는 작은 나무기둥 하나가 서 있다. 이름은 '사운드포스트'. 앞판과 뒷판을 연결해 악기의 울림을 지탱한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소리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이 나무의 지름은 고작 6㎜ 남짓. 그럼에도 울림의 방향과 색깔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느슨하게 세웠는지 단단히 끼웠는지에 따라서도 소리가 달라진다.

이탈리아어로 '사운드포스트'는 애니마(anima), 즉 '영혼'을 뜻한다. 작은 나무 하나가 악기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내 악기의 사운드포스트를 다시 맞췄다. 몇 년 동안 막혀 있던 울림이 있었다. 활털을 새로 갈고, 줄을 바꿔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였다. 전문가와 함께 미세하게 위치를 옮기자, 악기가 숨을 고르듯 자연스럽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같은 현, 같은 활, 같은 손인데도 울림이 달라졌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악기가 한숨을 내쉬듯 소리를 터뜨렸다. 마치 "이제야 내 자리를 찾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 순간, 악기 안의 공기가 달라지고 방 안의 공명도 함께 변했다.

악기의 울림은 공명으로 완성된다. 공명 없는 악기는 개성도 없고, 울림도 없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닫혀 있으면 어떤 감정도 공명하지 않는다. 진짜 공명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내면이 단단히 서 있을 때, 그 고요 속에서도 깊은 울림이 자라난다. 그 울림은 누군가에게 들려주지 않아도 존재의 증거가 된다.

요즘은 속도와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대신하는 시대다. 그러나 울림은 빠른 결과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공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나온다. 악기 안의 이 작은 기둥은 사람의 마음과 닮아 있다. 겉으론 보이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자신을 지탱하는 중심이 있다. 그 기준이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가 중요하다. 남의 속도에 맞추느라 자신의 리듬을 잃으면, 결국 울림은 사라진다.

사운드포스트를 조정하던 그날, 나는 내 마음의 기둥도 함께 조율하고 있었다. 손끝으로 나무를 살짝 움직일 때마다, 내 안의 막혀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풀려나갔다. 소리가 달라지니 연주가 달라졌고, 연주가 달라지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결국 우리의 울림을 결정짓는 건 그 보이지 않는 기둥 하나다.

지금 내 안의 기둥은 제자리에 서 있을까? 아니면 조금 어긋난 채, 울림을 막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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