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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김유진] '디테일'에 발목 잡힌 수성못 수상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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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사회부 기자

김유진 사회부 기자
김유진 사회부 기자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 독일 출신 근대 건축의 거장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항상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한 건축물이라도, 사소한 부분까지 품격을 지니지 못하면 명작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국내에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로 변형된 표현이 널리 쓰이지만, 결국 신과 악마를 가르는 핵심 요인은 '디테일'에 있는 셈이다.

앞으로 2년 뒤에 펼쳐질 '수성못 축조 100주년'의 모습 역시 '디테일'에 달렸다. 대구 수성구는 2027년까지 11곳의 지역 문화 거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방문객들로부터 '지나가는 도시'가 아닌 '목적지가 되는 도시'로 변모하겠다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그중 가장 야심 찬 사업은 단연 '수성못 수상공연장'이다. 대구 대표 명소 중 하나인 수성못에 세계적 수준의 공연장을 만들어 100주년 기념 무대를 펼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노후한 수성못 수상 무대는 철거하고, 수성못 서쪽 9천943㎡ 규모 터에 건축비 300억원을 들여 2천 석 규모의 수상공연장을 설치할 방침이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등을 유치해 '세계적 공연 도시'로 도약하는 것은 물론, 사계절 내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원식 공연장'으로 만들어 수성구의 중요한 집객(集客) 자원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속도전에 치중한 나머지 디테일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수성못 공연장은 당장 내년 연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건축비를 분담할 국·시비 지원 비율조차 확정 짓지 못했다.

수상공연장 건축비는 당초 90억원 수준에서 지난 2023년 '국제 지명 설계 공모'를 거친 뒤 300억원으로 늘었는데, 올해 80억원의 세수 펑크를 겪은 수성구 입장에선 예산 확보 문제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연장 조성을 위해 필요한 농어촌공사 부지 매입 문제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수성구청은 지난달 29일 주민설명회도 열었지만, 이 역시 디테일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현장에선 주민설명회가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 같다는 지적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 중 관변단체 등 이해관계 없이 방문했다는 주민은 단 7명에 불과했다. 사실상 사업을 함께 진행하는 대구시와 지역 국회의원실 관계자조차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설명회 구성에 대한 아쉬움은 별론으로 해도, 예산 마련안 및 운영계획에 대해서도 상세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순수 구비만 150억원이 드는 '스카이브릿지' 조성 사업을 고려한 예산 분담 대책이나 향후 운영 계획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명쾌한 설명은 부재했다. 특히 연간 운영비나 공연장 관리 인력은 세부적인 계획안조차 마련되지 않은 듯했다.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고, 상권 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지역 발전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비전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이대로라면 사업 진행 과정 내내 진통이 계속될 가능성이 적잖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요인도 결국은 '디테일'이다. 위기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의 악마를 제대로 제거한다면, 그 위기는 기회로 도약할 수 있지만, 악마를 발견하지 못할 경우 위기는 더 큰 위기로 번질 수밖에 없다. '수성못 축조 100주년'을 성공적으로 맞기 위해서는 문제를 직시하고, 지금부터라도 디테일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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