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기 대가 심전(心田) 안중식의 제자 중 산수화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심산 노수현과 청전 이상범은 스승에게 고전산수의 정신과 기법을 착실하게 배웠다. 안중식은 많은 후배 세대를 가르쳤고 호를 지어주었지만 이 둘에게 심산(心汕)과 청전(靑田)으로 자신의 호에서 한 글자씩 주었을 만큼 아꼈다.
1923년 노수현, 이상범, 변관식, 이용우 등 4명의 동양화가는 동연사(同硏社) 그룹을 결성했다. 중국풍에서 탈피하고 일본풍에 물들지 않은 우리 그림을 새롭게 펼쳐나가려는 의지였다. 동연사는 당장 어떤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평생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의지를 실현해 보였다.
1920년대는 서양미술이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화가가 대상을 직접 관찰하는 사실성이 중시되던 미술 환경이었다. 이상범은 시골마을의 사생(寫生)에서 출발해 농부가 있는 산촌 풍경을 전형화한 자신의 양식을 이뤘고, 노수현은 1940년대 이후 산수화의 영혼이 나온 곳인 정형산수로 회귀해 자연의 숭고한 모습인 고전산수의 이상경에 새로운 조형성을 더했다. 자연과 그림에 대한 무한한 애착은 같았으나 각자의 성향과 문제의식에 따라 산수화의 방향이 달랐던 것이다.
노수현은 1940년 우리나라에서 당대의 화가를 '대가'로 호명한 '조선미술관 10주년기념 10대가 산수풍경화전'이 열렸을 때 고희동, 허백련, 김은호, 박승무, 이한복, 이상범, 최우석, 변관식, 이용우 등과 함께 초대돼 이후 10대가로 꼽히게 된다.
가을풍경인 '추경산수'는 선면을 상하로 반분한 흔치않은 구도인데다 상반부인 원경의 아랫부분이 볼록하게 둥근 선을 이루며 휘어져 있어 특이하다. 그래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오는 듯한 원경이 근경인 오른쪽 언덕과 만나며 공간이 긴박하게 압축된다. 강은 그 사이에 엉거주춤 끼어있게 되면서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기운다. 이런 쏠림은 언덕의 일부를 왼쪽 아래로 나지막하게 연장시키며 안정감을 주어 해결했다.
근경의 언덕은 담황색과 옅은 먹 점을 농담으로 중첩해 듬직한 덩어리 감을 나타냈고, 원산의 산봉우리와 그 아래 강안도 형태감이 단단하다. 단풍 든 나무가 강을 향해 쓰러질 듯 비스듬한 것은 반원형인 부채꼴 화폭에 맞추어 구심성이 강한 구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반면 나루터의 주막임을 알리는 깃발, 강 위의 기러기 떼, 세 척의 돛단배 등 움직임이 있는 물체는 모두 화면 밖을 향한다. 그래서 안쪽으로 모이는 구도와 바깥을 향하는 운동감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룬 활력적인 화면이 됐다.
노수현의 '추경산수'는 이상적 자연경을 박진감 있는 과감한 구도, 담채를 활발하게 사용한 맑은 색채감, 산과 언덕의 괴량감 있는 물체 표현 등 개성적인 화풍으로 소화해 정형산수에 현대적 생동감을 불어넣은 선면화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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