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출판된 철학자 칼 포퍼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에서조차 극단적 정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재 다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1938년 독일의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였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한 칼 포퍼가 전체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서로 집필하기 시작하여 1943년 완성한 책이다. 칼 포퍼가 말하는 '열린사회'란 파시즘이나 공산주의같은 전체주의와 대립되며 이성과 자유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바탕으로 비판과 논증을 통해 합리적 원칙과 합의를 찾아나가는 사회를 말한다.
'열린사회'는 자유로운 비판이 허용되고 관용과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다. 자유가 보장된 사회이며 각 개인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평등한 존재다. 국가는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은 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다수결의 지배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허용되는 사회다. 칼 포퍼는 전체주의의 위험이 권력자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확신에 사로잡힌 시민에게서도 비롯된다고 보았다.
칼 포퍼의 주장은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자유'를 말하지만, 정작 자유롭게 생각하기는 두려워한다. 대화는 점점 '논리'보다 '진영'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어떤 사안에 대한 견해보다 그 발언자가 어느 진영에 속했는지가 먼저 문제된다. 생각이 다르면 '적'이 되고, 질문을 던지면 어느 '편'인가를 의심받는다. 우리는 진영과 혐오의 언어로 세상을 가르며, '다름'을 토론이 아닌 '배척'의 이유로 삼는다.
그 결과 사회의 공론장은 점점 닫히고, 자유의 공간은 협소해졌다. 서로 다른 견해는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보다 '배신'이나 '적대'로 규정한다. 좌우의 극단, 진영의 열광, '정의'의 독점, 언론의 편향, 그리고 SNS의 무차별 확산은 모두 열린사회를 잠식하는 현대적 적들이다.
열린사회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래서 칼 포퍼는 열린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비판할 자유가 필수라고 보았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문화에서는 비판이 곧 '변절'로 해석된다. 그래서 '수박'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다면 먼저 자기 진영 내부에서조차 불편한 진실을 말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열린사회'는 우리 편이 옳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편이 틀릴 수 있다는 자각, 그 자각 위에서 비판적 이성이 있을 때만 지속될 수 있다.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고, 동의하지 않아도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지키는 일, 그것이 민주주의의 품격이며, 시민의 성숙이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첫 국감이 진행되고 있으나 국회의원들의 국감장에서의 행태는 가관이다. 비판과 논증을 통해 합리적 원칙과 합의를 찾아나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개딸 등 진영의 열광적인 지지만을 얻기 위한 상대방을 향한 고함과 혐오의 언어만 난무하다. 소수당에 대한 관용과 타협은 사라지고 다수결원칙의 남용으로 일방적 밀어붙이기식 입법만 남발되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위인설법(爲人設法)적 성격이 강한 대법관 12명 증원법, 4심제 재판인 재판소원에 이어 검사와 법관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 "법 왜곡죄를 신속 처리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법 왜곡죄'는 법관을 처벌대상으로 삼아 정치적 이슈가 되는 사안일 경우. 법관의 소신있는 재판에 대해 '법 왜곡죄' 혐의를 뒤집어 씌울 위험성이 있고 법관의 독립적인 사법권 행사를 저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다'라는 이분적 사고는 국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고 민주주의를 무너지게 할 수 있으며 국가시스템 자체를 망가뜨린다. 최악으로는 내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미국의 내전 영화 '시빌 워'가 영화 속 이야기만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전은 국가간 전쟁보다도 더 참혹하다.
열린사회의 적인 전체주의 위협은 확신에 사로잡힌 시민에게서 비롯된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는 '국민의 뜻'을 내세워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여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분노로 환원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칼 포퍼는 '자유로운 사회는 언제나 내부로부터 무너진다'고 경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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