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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안녕,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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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표 도서관인
대구 대표 도서관인 '대구도서관'이 5일 개관식을 열고 운영을 시작했다. 남구 옛 미군 기지 캠프워크 반환 터에 들어선 이곳은 기본 계획을 세운 지 10년 만에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8만5천여 권의 도서를 비치했으며 디지털 자료실 등 다양한 열람실을 갖췄다. 이날 대구도서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부를 둘러보는 모습.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입구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이었다. 한쪽엔 무인 사물 보관함이 있었고 경비 겸 안내 데스크 뒤편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나선형 계단은 건물 규모와 비교해 좁고 초라했다(새 건물이니 새것들로 장식된 새로움은 별도로 하고). 주말이어서인지 제법 많은 이들이 돌아다니거나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대구도서관'이 개관했다.

도서관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고 지식과 지식을 이어주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물질적이면서 비물질적이고 그 자체로 장소성을 획득하는 공간이다. 많은 이들에게 도서관은 또 다른 안식처였다. 따뜻하고 건조하고 유용하면서 자유로운 곳. 빼곡하게 들어찬 장서와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들. 아무리 고단하고 빈약한 시대였을지언정 도서관만큼은 풍요로 가득했다. 수전 올리언이 "도서관은 그 황량한 시대에 사람들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고 말한 건 이 때문일 터.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에도 많은 도서관이 등장한다. 이때 도서관은 희망의 장소이고 개혁을 꿈꾸던 자리였으며 첫사랑이 시작된 곳이었다. 상황에 따라 안전한 장소도 된다.

1947년 아내와 아내의 정부 살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유능한 은행가 앤디 듀프레인이 꿈을 키우는 장소는 도서관이다. 앤디는 재소자 신분이지만 주 의회를 설득해 책을 사들이고 매년 500불 지원을 받아 미국 감옥 중 최고의 도서관을 만든다. 삭막하고 거친 교소도 속 도서관은 풍요와 지식과 희망을 싹틔우는 공간이었다. 결국에 그는, 미식축구장 5개 길이의 오물 구덩이를 기어서 탈옥에 성공한다. 눈 밝은 독자는 알아차렸겠지만 '쇼생크 탈출'이다.

이인화의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든 '영원한 제국'은 규장각 살인사건을 둘러싼 하룻밤의 이야기다. 개혁군주 정조와 선대왕의 금등지사를 둘러싼 암투가 시작되는 장소가 규장각이고 주인공 역시 규장각 대교 이인몽이다.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에서 중학교 시절 같은 반의 동명이인인 두 사람이 도서위원이 되어 사랑을 싹틔우는 곳도, 짧고 굵은 청춘의 열병 같은 이야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시한부 삶인 사쿠라와 하루키가 우정을 나누는 공간도 모두 도서관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기상 이변으로 남극 빙하가 무너져 내리고 뉴욕은 빙하기에 접어든다. 지하철과 지하 대피 시설마저 침수된 상황에서 시민은 어디로 대피해야 할까? 영화 '투머로우'는 뉴욕공립도서관이라고 답한다. 1만 년 만에 닥친 빙하기로 대부분이 동사하지만 도서관에 피신한 시민들은 책을 땔감 삼아 보온을 유지하고 책에서 터득한 지식으로 패혈증도 치료한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내 기억 속의 도서관은 안전한 침묵이 흐르는 곳이었다. 언제나 따뜻했으며 고립을 피하면서도 고립을 유지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아지트는 없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인류의 지성사와 독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대구도서관'은 위에서 아래가 보이고 아래서는 위가 보이는 구조였다. 공간 속 사람이 공간의 일부로 보이기를 바랐을까. 나는 손님조차 인테리어의 일부가 되는 대형 북카페를 떠올렸다. 지나치게 매끈한 기물들에 손때가 묻고 책 냄새로 가득할 날을 기다린다. 책은 더 많이 채워질 것이고 주변의 것들도 시간 흐름에 따라 자리 잡겠지. 그래야 할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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