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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의 픽 인터뷰] '인형을 사랑하고 마임에 빠진 남자'…육동한 춘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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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육동한 춘천시장
육동한 춘천시장

춘천 나들목을 빠져나오자, '막닭'이라고 표기된 가로등 배너들이 소양강 상류를 덮고 있었다. 운전석 옆에 앉아 있던 박소리 기자는 사라지는 배너들을 돌아보았다. 공지천 일대에서는 춘천의 대표적인 막국수, 닭갈비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를 '막닭축제'라 부른다. 춘천에는 전국 제일의 막국수, 닭갈비 노포들이 많아서 그게 도시의 브랜드가 되었지만, 요즘 춘천은 인형극제와 마임의 도시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은 효자동에서 태어났고, 배삼룡 선생은 춘천에서 자랐다. 이외수 선생은 춘천을 대표하는 예술가이며, 한국 마임의 창시자인 유진규 선생은 춘천 마임을 전국적으로 브랜드화한 예술가다. 이 밖에도 수많은 예술가와 문학인들이 '소양강 처녀'의 손에서 자라난 셈이다.

춘천인형극제 홍용민 사무국장은 육동한 춘천시장을 인터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손 인형, 막대 인형들을 소품으로 들고 왔다. 그는 "춘천인형극장 뒤편에 소품 창고가 있는데, 육 시장님이 휴일에 반바지 차림으로 오셨어요. 놀라서 왜 오셨냐고 물으니, '그냥 지나가다 궁금해서 들렀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시장님보다는 동네 선배 같아요. 공식 행사 외에 공연 보러 다니실 때는 사모님이 인터넷으로 예매하시고 그냥 오십니다"라고 전했다. 그동안 빠듯한 예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던 춘천인형극제는 내년부로 예산이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증액되었다. 1989년부터 시작된 춘천인형극축제는 춘천의 대표적인 공연예술 브랜드이자 아시아 최대 인형극 페스티벌이다. 올해는 유니마(UNIMA, 국제인형극연맹) 총회와 세계인형극제를 개최하면서 60개국 200여 명의 전 세계 인형극 예술가들이 춘천을 찾았다. 홍 사무국장은 "그동안 예산이 멈춰있었는데, 이제야 뭘 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부산 출신인 그는 이 축제로 인해 춘천 시민이 된 지 오래다.

춘천시청은 현대화되어 있었다. 나는 90년도 제2회 춘천인형극축제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구도심 춘천시청 분수대 앞에서부터 시내까지, 인형을 들고 약 5km 거리를 행진했다. 인근 국민학교 교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강당에서 공연을 했는데, 어린이 관객들이 끊이질 않았다. 춘천 시민들은 36년 동안 인형극과 마임을 보며 호반(湖畔)의 정서를 키워왔고, 이제 축제는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장실 옆 부속실에는 춘천 도시 전경이 담긴 액자 사진이 걸려 있었다. 육동한 시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춘천이 고향이다. 공무원 시절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함께 근무하며 기획예산처와 경제·교육 분야를 두루 거쳤고, 차관급인 국무총리실 제3대 국무차장을 지냈다. 이후 2022년 당시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전국 지방선거에서 춘천시장으로 당선됐다.

인터뷰가 진행된 부속실 테이블 뒤쪽에는 시장의 자서전인 『육동한의 봄내일기』 십여 권이 꽂혀 있었다. 그는 뭔가를 보여주려는 듯 책장을 뒤적였다. 국민학교 시절 교회 성극에서 공연했던 사진 한 장이었다. "보세요. 제가 연극하고 인연이 깊습니다. 형과 형수님도 연극을 하면서 결혼하게 된 인연이 있죠." 춘천에 축제가 많다고 하자 그는 "맞습니다. 제가 시장이 된 뒤로는 축제를 토종 시민 중심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그동안 외지인들이 춘천 축제를 이끌어왔어요. 축제가 끝난 뒤 그들이 떠나면 춘천은 남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토종 시민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마임 축제에 대한 불만을 전하자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 마임 축제로만 가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예술가분들은 그렇게 말씀하시겠지만, 시민과 관객 중심의 선호도나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춘천이 2027년 대한민국연극제 개최 도시입니다.

"춘천의 연극 역사가 깊습니다. 1967년 강원도 지부로 연극협회가 시작되어 2027년에는 50주년을 맞습니다. 대한민국연극제에서 강원도와 춘천 극단들이 수상도 많이 했지요. 앞으로는 연극을 시민들의 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춘천을 대한민국 연극의 수도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준비가 다 되셨군요.

"아니죠. 여전히 극장 공간 확충이 필요해요. 이미 춘천문화예술회관, 축제극장 몸짓, 봄내극장, 춘천인형극장과 같은 전문 공연장들이 잘 조성되어 있고 연극인들을 위한 발표, 연습, 창작 공간도 확보되어 있긴 합니다. 또 KT&G 상상마당, 백령아트센터 등 민간과 공공의 다양한 대관 인프라도 마련되어 있어서 창작자들에겐 문턱이 낮은 환경이지요. 다만 여전히 안정적인 지원과 창작 공간의 지속적인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대한민국연극제 이전에 극장을 더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고, 춘천이 호반의 도시이니 수상(水上) 무대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춘천은 역사적으로 공연예술이 활발한 도시인데.

"춘천은 마임축제, 인형극제, 연극제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춘천연극제, 춘천공연예술제, 봄내예술제 등에서는 지역 예술가를 대상으로 공연장 대관, 작품 공모, 신작 창작 지원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과 청년 예술인을 위해서는 희곡·연출·연기 등 창작 교육 과정을 연중 운영하고 있어요. 덕분에 시민들도 무대에서 직접 신작을 공연하는 등 생활 속 공연예술의 저변이 두터워졌어요. 창작자 누구나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지고 있죠. 춘천을 '수상 예술 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특정 장르를 위한 축제로 운영하기보다는, 예를 들면 연극·인형·마임 축제를 할 때 '막닭' 축제도 같이했으면 해요. 수상 무대라는 춘천 특유의 무대 환경 안에서 춘천다운 공연을 하게 되면 그것 또한 차별화된 지역 축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연극제를 기점으로 그렇게 전환하려고 합니다."

▶막국수와 닭갈비 축제가 같이 열리더군요.

"제가 춘천에 와서 축제를 여러 번 가보고 시장으로서도 세 번 경험했는데, 지역 축제로서의 고유성이나 시민에 기반한 자발성이 지금은 없는 추세거든요. 닭갈비와 막국수를 내세웠지만 사실 지역 내 관련 업체들의 참여가 저조했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지역 축제로서의 정체성이 거의 없고 모두 외지 업체들 위주였습니다. 공연 내용도 주로 트로트 일변도였고요.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해서, 작년에 단단히 결심하고 축제를 싹 바꿔보기로 했어요."

▶어떻게 바꾸셨습니까?

"축제의 모든 소재, 즉 사람·콘텐츠·음식 등을 춘천 지역에서 동원하기로 했지요. 넓지만 멀찍이 떨어진 곳이었던 메인 축제 장소를 춘천 도심 중앙의 공지천변으로 옮겼습니다. 이제 축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비롯한 모든 콘텐츠는 시민의 참여로 만들고, 시민과 시가 보유한 문화예술 자산들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춘천의 닭갈비 막국수 집중 지역이 크게 세 군데 있어요. 전통적으로는 시내 구도심 안의 명동이죠. 지금 여기, 시청 있는 곳이 명동입니다. 그리고 강 건너 샘밭과 남쪽의 온의동이 있어요. 이 지역들에서 축제가 같이 이루어지게, 사람들이 닭갈비와 막국수가 있는 지역으로 직접 가서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축제 메인 장소는 공지천변이지만, 음식과 관련된 지역에서도 축제가 병행되도록 바꿨어요."

육동한 춘천시장.
육동한 춘천시장.

▶그렇군요. 저는 1990년도부터 춘천인형극축제 등 춘천 지역예술을 경험했었는데요. '춘천의 예술'은.

"춘천이라는 도시는 역사적으로 고유한 분위기와 자연이 주는 특별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물과 안개가 많은 도시로 유명했죠. 이러한 지역적 특성이 춘천 시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감수성이 풍부한 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춘천에는 학교가 많고 큰 대학이 있어서 지역의 문화적인 기반을 지원할 수 있는 교육 자산이 상당한 수준으로 존재해 왔어요. 서울과 가까워 문화적 교류가 용이한 이점도 있습니다. 거리상 이점은 관광을 통해 수도권의 젊은 세대들이 늘 춘천을 기억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기도 했지요. 이 모든 요소가 총체적으로 춘천의 문화 예술적 토양을 만들어왔습니다. 이외수 작가와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부터 전상국, 오정희, 한수산 작가 등 많은 소설가가 춘천에서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론 춘천의 문화적, 자연적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예술가는 이외수 작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소설도 있지만, 춘천이라고 하면 연극인도 많고 마임이나 인형극의 도시로도 유명하죠.

"맞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춘천의 연극이 아마 1970년대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춘천연극협회가 1967년 강원도지부 소속으로 시작해 1995년 춘천시지부로 독립한 이후, 수많은 극단과 연극인들을 결집해 지역 연극 문화 발전에 역할을 다해왔어요. 대학연극축전, 춘천소극장 페스티벌, 봄내연극제, 청소년 연극교실, 인형극, 워크숍, 연극예술상 등 여러 행사와 프로그램을 꾸준히 기획·운영해 온 걸로 압니다. 또 70년대 때부터 춘천에 여러 연극 집단이 생겨나고 대학에서는 연극 동아리가 만들어졌어요. 극단 혼성은 이제 50주년을 넘겼지요. 강원대학교에 '영그리'라는 연극 동아리가 있었는데, 고등학생 때 시민회관에 가서 그들의 공연을 봤습니다. 1976년쯤이었나, 그때 본 작품이 몰리에르의 <수전노>였어요. 그다음 해인가에 이강백 작가의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를 봤었네요. 사실 <수전노>에 나온 배우 두 명이 우리 형과 형수예요. 연극을 통해서 부부가 된 거죠. 저도 어릴 때부터 연극을 좋아해서 국민학교 다닐 땐 자그마한 교회 무대에 직접 서기도 했어요.(웃음)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저고, 이 사람이 동방박사, 이 사람이 헤롯왕이에요."

▶2027 대한민국연극제 개최를 계기로 춘천이 대표적인 연극 도시로서 어떻게 발전될 수 있을까요.

"춘천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즐기실 수 있도록 실내 극장뿐만 아니라 공지천, KT&G 상상마당 등 춘천의 다양한 명소에서 다채로운 부대 행사를 열려고 합니다. 경연과 더불어 시민극단, 청년 창작집단, 생활 예술인까지 참여하는 사전 프로그램, 마을·거리·먹거리·소상공인과 연계한 동네 축제, 토론회, 국제 교류, 예술교육이 함께 어우러지도록 준비해야죠. 무엇보다 축제 과정에서 춘천이 경쟁보다는 연대와 창의성, 공존의 도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연극·마임·인형극뿐 아니라 마술도 같이 활성화하겠다는 거거든요. 연극이야 고대부터 모든 예술의 모태가 되어왔지만, 이 모든 장르가 결국 인간의 내면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무대 예술이지 않습니까? 온 도시가 연극과 함께 다채로운 공연예술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되면 좋겠어요. 모든 곳이 무대이고 다양한 예술이 유비쿼터스로 존재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죠."

▶ 무대 예술의 도시, 공연 예술의 도시로 진입하기위한 지원은.

"공공 분야의 자원에 의존해서 해결하려는 인식은 버려야 합니다. 너무 지원에 의존하다 보면 발전이 더딜 수도 있습니다. 예술가가 배고파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변에 뿌리를 내리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예술인들 스스로 연대하여 힘을 키워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제가 과거 교육부 예산실에 있을 때 옆방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매일 싸우고 골치 아픈데 그쪽은 늘 화기애애하더군요. 많은 문화예술·체육 단체들이 제한된 예산을 받기 위해 담당자에게 잘 보이려 하기 때문이죠. 이런 모습이 겉으로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사실 건강한 토양은 아닙니다. 지원은 필요하지만, 이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육동한 춘천시장.
육동한 춘천시장.

▶공공지원에만 의존한 창작환경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폭 넓은 지원 정책도 중요하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어떤 계기가 있을 때 이를 통해 크게 도약하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연극제가 춘천에서 개최되면, 이를 기반으로 많은 것들을 시도하게 되고 당연히 재원도 많이 필요하겠죠. 이때 예술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면 그 효과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거든요. 인형극제처럼 대한민국연극제도 춘천 연극의 저변을 넓히고 지원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겁니다. 이처럼 도약의 계기를 많이 만들어야 예술의 저변도 확대되고 시민들의 관심도 더욱 커집니다. 그런데 지역의 실제적인 뿌리 없이 어떤 행위나 행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춘천의 예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돈을 들여 외부 공연만 가져오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막국수닭갈비축제에서도 외지인들이 와서 단발성으로 장사하고 떠나는 구조를 끊어내느라 힘들었습니다. 체육이나 레저 분야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지역적인 뿌리를 가지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춘천시는 강원도립극단과 협력하기도 하고 많은 공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요즘 극장을 찾거나 춘천 현장 예술가들과도 좀 만나는지요.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하지만 예술 현장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홍용민 춘천인형극제 사무국장이 있는 데는 부르지 않아도 제 발로 가서 둘러보곤 해요. 다들 고생하는데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사기가 올라갈까 싶어서요.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큰 스타가 되기 전까지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래서 시장이 여러분 곁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으로 현장을 찾는 거죠."

▶춘천마임축제를 초기부터 참여해 온 분들 사이에서는 마임의 순수한 예술성보다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합니다. 제가 시장이 되기 전부터 그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던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순수하고 고전적인 형태의 마임 요소와 그것이 확장되어 다양한 형태로 현장화·시민화되는 형태를 모두 존중합니다. 작년 마임축제·문화도시박람회에서도 솔로 공연부터 여러 형식의 마임 공연이 다채롭게 진행됐고 모두 흥미로웠어요. 공연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이들의 입장도 있지만, 시민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은 마임이고 저것은 아니다'라는 구분이 현장에서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강원 지역의 몇몇 극단들은 작품들이 우수합니다. 창작을 잘하더라고요. 지역적인 소재를 개발하는 극단도 있고, 실험극을 하는 단체도 많은 것 같습니다. 강원 지역 극단을 더욱 생산적으로 이끌기 위한 계획은.

"누군가의 부탁으로 문화 예술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의 제목을 "춘천, 문화예술의 깊고 그윽한 향로"라고 지었습니다. 춘천이 분지라서 하나의 향로 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게 춘천 예술에 대한 제 마음입니다. 강원도립극단 공연을 몇 번 본 적은 있습니다. 다만 도립이다 보니 제가 극단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오지는 않았습니다. 춘천에서는 시민 극단도 활발히 활동을 하고, 춘천에 뿌리를 두고 서울 혜화동에서 상설 공연을 하는 무하 같은 극단도 있어요. 수몰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던 연극 작업이나 태권도 연극 같은 것들도 진행돼왔습니다. 지역 창작자들이 잘 활동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함께하는 것이 저의 중요한 역할이겠지요. 강원 지역 극단들의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만들기 위해 춘천시, 강원도, 문화재단, 정부가 다각적인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강원문화재단과 관련 기관들이 매년 공연예술 단체들에 제작비, 대관료, 창작지원금, 홍보비 등을 지원하고 있죠. 춘천시 또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자체 공모 사업을 진행하고 문화재단 사업과도 협력 중입니다. 시민·청년에 기반한 극단 창업과 우수 신작·레퍼토리 제작도 지원하려고 합니다."

육동한 춘천시장,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육동한 춘천시장,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지원확대가 기대되는군요.

"흔히들 서울과 지방을 비교하며 서울은 문화 예술이 풍부하고 지방은 소외되었다고들 이야기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단순히 물량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는 물론 많은 이벤트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과 돈의 제약 때문에 예술에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부 계층 이외에는 오히려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거죠. 반면 춘천에는 도시 크기에 비해 굉장히 많은 문화 예술 행사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쉽게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불과 30분이면 춘천의 공연장 어디에나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춘천이 서울보다 문화예술 접근성이 훨씬 좋다고 봐요. 문제는 개인이 예술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죠."

▶춘천은 서울과 인접해 있고 문화 인프라도 풍부합니다. 하지만, 관객 규모 면에서는 서울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춘천 전역에 작은 공연장, 문화 도서관 등 '10분 생활문화권'을 촘촘하게 구축하고, 모든 연령과 계층이 동네마다 맞춤형 문화 예술 교육과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은 관광이나 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육의 경우, 아무리 인구가 줄어들더라도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에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춘천과 서울은 지금도 가깝지만 불과 2~3년 후면 기차로 한 시간 거리로 단축되어, 춘천이 거의 서울과 다름없는 생활권이 될 겁니다. 아직 춘천에는 서울보단 공연 인프라가 부족한 게 사실이지요. 물론 모든 공연에 규모 있는 극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외지 관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큰 극장도 있어야 해요."

▶어떤 방법으로 극장을 활용하실 건가요?

"지금도 마장달빛교라는 다리 위에서 공연이 이뤄지고 있는데,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온 도시가 무대가 되는 '무대 도시 춘천을 만들고자 하는 거죠. 외지인들이 단순히 공연만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춘천에 와서 즐기고 먹고 마실 수 있도록 관광과 예술을 결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최근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의 고향인 파르마를 방문했는데, 그곳의 고전적인 원형극장에서 오페라 <오셀로>를 봤어요. 옛날 극장이지만 시스템은 최첨단이더군요. 파르마는 춘천시와 오랫동안 교류를 해왔고 이번에 두 도시가 자매결연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춘천을 파르마와 같은 공연예술 관광도시로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춘천을 어떤 도시로 확대해 나가실겁니까..

"춘천은 굉장히 조밀한 도시입니다. 이곳의 모든 분야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중 하나가 문화 예술 분야예요. 춘천은 이미 충분한 도시적 환경과 훌륭한 인재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더 개발해서 수도권과 연계하고, 춘천을 문화 예술 도시로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춘천이 유럽의 문화 예술 도시들처럼 높은 위상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춘천이라고 하면 '수도권에 인접한 뛰어난 문화 예술의 도시', '깊고 그윽한 향로 같은 춘천'이라는 타이틀을 떠올릴 수 있도록 열심히 힘써보려 합니다."

육동한 시장은 사진 촬영을 하면서 막대 인형을 능숙하게 움직였다. 인터뷰를 마친 후 점심 식사 자리에서 홍 사무국장에게 '육동한 시장은 춘천 연극인들에게 몇 점 정도 되는지' 묻자 "80점은 됩니다. 지역 연극과 인형극, 마임에 대한 애착이 많으십니다. 불쑥 연습실에 나타나시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춘천인형극제 숙원사업인 예산 증액이 두 배로 이뤄졌잖아요"라며 웃었다. 육동한 시장은 함께 자리한 연극인들을 향해 때때로 "그거 뭐지?", "맞지?"라고 물으며 후배처럼 편하게 대했다. "앞으로도 전화 안 하고 공연장이나 인형극장에 불쑥 가볼 거니까."라는 시장의 말에 홍 사무국장이 거들었다. "그때 반바지 입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처럼 오셨잖아요." 춘천의 인형극을 사랑하고 마임에 푹 빠진 육동한 시장은 지자체장이라기보다는 지역 연극인들의 동네 선배처럼 보이기도 했다.

육동한 춘천시장,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육동한 춘천시장,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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