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광복회 대구시지부(지부장 우대현)는 지난 9월 24일 해마다 하던 항일 유적지 순례로 경남 진주를 찾았다. 이를 위해 필자는 사무국 이경미 과장과 함께 9월 9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사전 답사까지 마쳤다. 대구에서 진주에 이르는 갈랫길과 잠깐 쉴 휴게소, 진주에서 들러볼 만한 곳과 식당 등에 대해 광복회 경남도지부와 진주지회의 친절한 자문과 조언을 받으면서.
75명이 관광버스 3대에 나눠 타고 조양회관과 롯데백화점 상인점에서 각각 출발해 논공휴게소에서 합류해 인원 등을 점검했다. 그리고 순례 참가 광복회원들께 나눠 줄 물품을 전달했다. 아울러 당일 기상청 예보에 따라, 진주에는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초 오전11시쯤부터 예정된 유적지 순례 일정을 다소 줄이거나 바꾸는 등 현지 상황에 맞게 운영할 것이라며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계획 일정은 논공휴게소 출발에서부터 바뀌었다. 당초 논공휴게소를 떠나 진주까지 가기로 했던 것과 달리 산청휴게소에 잠시 들러야 했다. 일정 변경과 함께 생각지 못한 일은 산청휴게소에서 일어났다. 휴게소에 잠시 머물다 떠나려는 순간, 한 젊은이가 두 손에 작은 상자를 하나씩 들고 필자가 대기하던 버스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상자를 내게 건네고는 가려고 했다.
급히 돌아서던 젊은이를 붙잡았고 물었다. 누구인지, 물건은 무엇인지, 왜 주는지를. 젊은이가 건넨 명함에는 '이상문'이라는 이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라는 회사, 직함(팀장)이 적혀 있었다. 상자에 든 것은 '수제 단팥빵'으로, 휴게소 매점에서 샀으며, 출장길 휴게소 화장실에서 만난 어르신 명찰에 '광복회'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와 전달하게 되었고, 고향이 경북 구미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생각지 못한 일은 진주에서도 이어졌다. 당일 많은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에 일정을 서둘러 진행한 순례단은 급히 순례를 마치려 진주 형평운동기념탑과 진주성 내 3·1만세운동기념탑을 비롯한 항일 유적지, 촉석루 등지를 빠르게 살폈다. 그리하여 이날 진주지회장(화유전)과 회원들의 뜻밖의 환영 속에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된 유적지 순례는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은 가운데 끝났다.
무덥고 흐린 날씨 속 순례를 마치고 진주를 떠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렸다. 비는 오락가락했고 대구 도착 때는 완전히 그쳤다. 순례 참가 회원들 모두 "조상 덕분"이라며 덕담을 건넸다. 그리고 산청휴게소에서 한 젊은이로부터 선물로 받은 단팥빵 20개를 회원들과 고루 나눠 먹으며 대구에 도착한 순례단은 광복 80주년 순례 행사를 잊을 수 없는 추억과 함께 마무리했다.
젊은이의 연락처를 묻는 일부 회원에게 명함을 전달했다. 필자도 그에게 전화로 감사 인사를 다시 전하고 "혹 집안에 독립운동가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집안의 아픈 사연을 들려주었다. 할아버지가 일제 때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 집으로 돌아오신 뒤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또 휴게소에서 만난 어르신 목에 건 명찰에 쓰인 '광복회'라는 글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광복(光復)은 '빛을 되찾다'라는 의미이다. 1915년 2월 15일(음력)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1910년대 최대 무장 항일 비밀단체 '(대한)광복회'에 쓰인 것처럼, 34년 11개월의 일제강점기 내내 '광복'이라는 단어는 수없이 명멸했다. 1965년 출범한 '제1의 정신단체'인 오늘날의 광복회 명칭도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올해 진주 항일유적지 순례길은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일로 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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