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교통수단의 발달은 인간의 행동반경을 급속히 확대시킨 반면, 그만큼 현대인의 안전은 취약해지고 있다. 특히 경제 논리가 안전보다 우선시되면서 공동체의 안전판은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어쩌면 크고 작은 사고들이 줄을 잇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1995년),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방화 사건(2003년), 세월호 침몰 사고(2014년) 등은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였다. 며칠 전에도 퀸 제누비아 2호가 무인도에 충돌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대부분의 사고는 안전 규정 무시, 부주의, 안이함 및 '대충대충' 문화가 빚어낸 복합적 인재였다. 사고가 발생하면,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사과를 하고, 특단의 대책을 약속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고의 여파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거대한 안전 불감증에 대한민국이 갇혀 있는 꼴이다.
스위스의 루체른(Luzern)에는 필라투스 산이 있다. 그 정상에 오르면 루체른 호수와 알프스가 동화처럼 펼쳐진다. 정상에 도달하는 방법 중 하나는 먼저 곤돌라를 타고 꼭대기 근처까지 이동한 후, 갈아탄 약 30인승의 케이블카로 막바지의 극심한 경사 구간을 오르는 것이다. 그 경사가 얼마나 가파른지 탑승객은 두려움을 느끼기 십상이다. 그러나 35년 전,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필라투스 정상에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복과 제모(制帽)를 갖춰 입고 '안전에 이상 없음'이라는 신호를 보낸 믿음직한 운전자 덕분이었을 것이다. 안전제일이라는 스위스 국가 브랜드와 필라투스의 케이블카 운전자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동화 같은 경관의 구경은커녕 두려움을 가득 품은 채 정상에 올랐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6천624달러(2024년), 세계 경제 순위 12위(2025년), 세계 최고의 K-culture, 세계 군사력 5위(2024년)인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은 필라투스의 케이블카가 보여준 신뢰를 가질 수 없는가?
아무리 대비를 잘 한다고 해도, 인간의 불완전성에 비추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렇지만 대비하지 않은 채 일어나는 사고와 그 반복은 방임이다. 모두가 안전한 국가를 만들 책무를 진다. 개별적 사고에 대한 책임 추궁이나 대책 마련과 함께, 근본적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예방적 조치에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선진 대한민국에 걸맞은 안전 문화를 범국민적 차원에서 재정립해야 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극심한 진영 대립으로 비정상이 정상처럼 작동하고 있다. 죄를 범하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라면, 하물며 부주의나 안이함 정도는 비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흐트러진 국가 질서를 바로잡음으로써, 비정상은 비정상으로, 정상은 정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하듯이, 국가 지도자들부터 공정한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동시에 국민 각자도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일에 가치를 부여할 때, 필라투스의 케이블카 운전자처럼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이고, 전 국민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상승할 것이고, '대형 사고 없는 대한민국'으로 수렴할 것이다.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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