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문학과 비평의 흐름 중 하나는 집단적 트라우마의 재현과 그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특히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대인 학살은 홀로코스트 문학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홀로코스트 문학의 특징은 역사와 집단이 개인에게 가한 모욕과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을 글쓰기의 임무로 생각한다는 것. 예컨대 프리모 레비는 글쓰기를 통해 수용소 기억과 나치의 잔학상을 증언했다. 극한 상황과 대면한 인간의 모습과 거대하고 불합리한 폭력에 말살된 인간성을 낱낱이 고발한 『이것이 인간인가』는 현대 증언문학의 고전이 되었다.
한편 조르조 바사니는 유토피아에 가깝던 페라라 유대인 공동체가 인종법과 홀로코스트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준다. 조르조 바사니는 인종법이 발효된 1938년부터 1943년 유대인의 강제수용소 학살까지, 역사적 기억에 문학적 상상력을 얹어 재현한다. 이때 바사니가 유대인을 잊지 않기 위해 강조하는 건 '기억'이다. 요컨대 바사니 문학의 핵심(특히 페라라 3부작)은 '기억'과 '글쓰기'이며 그의 글은 묘비도 무덤도 없이 사라진 유대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매체가 된다. 주목할 건 죽음과 기억이라는 중심 주제를 인종법과 홀로코스로 연결하면서도 개인적 감정을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부유한 유대인 핀치콘티니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화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이 아우슈비츠나 전쟁에서 죽음을 맞는 비극 속에서, 바사니는 화자의 '기억을 통해 그들을 살려낸다.' 책은 기억의 공존을 전시하는 프롤로그로 핀치콘티니들의 묘지로 화자의 사적 기억을 떠올린 다음, 홀로코스트와 그로 인해 파괴된 삶으로 공적 기억으로 확장한다. 4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되는데 인종법 발효 직후 이탈리아 사회에서 배척당한 페라라 유대인 공동체와 유대인의 삶이 한 축이고, 미콜에 대한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화자의 이야기가 다른 축이다.
바사니는 말한다. 기억을 복구하고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작가의 역할이며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남은 자의 역할이라고. 기억은 글쓰기의 기원이고 역사와 문학, 팩트와 해석,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며, 문학적으로 해석된 개인의 기억이 아우슈비츠 희생자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공적 영역으로 확장된다고 말이다. 결국, 기억과 재현과 추모가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을 관통하는 힘인 것이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해지는 집단적 폭력과 거대한 역사가 가하는 상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바사니는 파시즘 시대와 홀로코스트로 사라져간 이탈리아 유대인 문제를 문학적 재현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감정투사를 최소화했고, 유대인 박해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기보다는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해 보편적 인간이 느끼는 감정으로 받아들이도록 애썼다.
핀치콘티니가의 사람들을 만난 건 희귀한 경험이었다. 유대인과 홀로코스트 이야기가 넘치는 현실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박해가 공분을 자아내는 시절에 다시 잡은 책에서 여전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경험을 맛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눈물과 비탄과 절규가 강물처럼 흐르는 게 아닌 서서히 마음을 적시다가 마침내 가라앉히는 기묘한 작법. 유월절 화자의 집 식탁에 모인 장면 (229쪽)을 묘사할 때 나는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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