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염색산업단지 인근 주민들이 겪는 악취 피해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온다. 1980년대 조성돼 대구 경제의 한 축을 맡았던 염색산단은 기존 악취 문제에 이어 올해 폐수 유출까지 잇따르면서 군위군으로의 이전까지 추진되는 등 '달갑잖은' 존재가 됐다.
섬유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서고 공정 과정의 환경문제가 불거지면서 서구 비산7동과 평리6동 에는 고령의 숙련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 자영업자 등 생업이 얽힌 주민들만 남았다. 자연스레 이들의 건강권 문제도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수십년 간 염색산단을 지켜 온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 머리 맡엔 약봉지… "여름에 창문 못 열어"
지난 5일 대구 서구 비산7동의 한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목구멍 안쪽을 긁는 듯한 시큼하고 비릿한 공기는 차가운 북서풍을 타고 염색산단에서 주택가로 흘렀다.
비산7동에서 30년 넘게 거주해 온 김한숙(85) 씨는 염색산단 경계와 불과 117m 떨어진 비산7동 빌라촌에 살고 있다. 17살 때 경북 의성에서 대구로 올라온 김 씨는 평화롭던 비산동의 시골 풍경이 산단 한복판으로 변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다고 했다.
비교적 따뜻한 낮 시간대에도 김 씨 집 안방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김 씨는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장마철 습한 날씨에도 창문은 절대 열지 않는다. 문을 열면 매캐한 냄새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서 숨을 쉴 수가 없다. 바람이 불면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가 나다가도, 어떤 날은 쾌쾌한 냄새가 진동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일주일치 약을 받아 다 먹으면 잠깐 괜찮아졌다가도 금방 다시 코가 막히고 기침이 난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안방 침대 머리맡에는 항상 미지근한 물이 담긴 컵이 놓여 있었다. 자다가도 발작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침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다. 물컵 옆에는 비염약과 감기약, 기침약 봉투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김씨 남편 몸도 성치 않다. 보일러 기사였던 남편은 특히 염색산단 내 공장들의 보일러 수리를 도맡아 했왔다. 그는 20여년 전 갑자기 얼굴이 붓고 입맛을 잃더니 칠곡경북대병원에서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2년 간의 투병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보일러 기사직은 내려놨다.
김 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빨래를 널어놓으면 흰 옷에 새까만 먼지가 달라붙었다. 딸이 한창 예민하던 고등학생 때 옷에서 악취가 난다며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며 "그럼에도 형편이 어려워 이사는 못하고 나중에 졸업해 시내로 나가 살라는 말만 한 것이 아직도 가슴에 맺혀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약속이나 한 듯, 목엔 손수건이
염색산단 굴뚝이 빤히 올려다보이는 평리6동 새동네경로당. 이곳에 모인 17명의 할머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과 가래를 닦아내기 위해서다.
할머니 상당수는 가족 대신 경로당에서 비슷한 처지의 다른 할머니들을 만나 서로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경로당 회원으로 이름이 올라간 35명 중 절반 가량이 잠자는 시간만 제외하면 경로당에 상주하는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곳 할머니들은 염색산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 탓에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경로당에 있던 17명 중 남편과 함께 사는 할머니는 5명 뿐이었다.
경로당 구석에 앉아 있던 박성례(86) 씨는 건강 문제를 묻는 기자 목소리만 듣고도 눈물을 보였다. 그는 암으로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고 있다.
박 씨는 "아들이 18살 때 이 동네로 이사 왔는데, 50살에 췌장암으로 죽었다. 술, 담배도 안 하고 평소 정말 건강한 아이였다"며 "남편도 10년 전에 암 3기 판정을 받고 1년 투병하다가 갔다. 굴뚝에서 나오는 악취가 가족을 다 잡아먹은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김정기 새동네경로당 회장은 수십년간 주민 피해가 이어졌음에도 대구시와 서구청, 염색산단관리공단에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회장은 "우리 동네는 할매들만 남고 영감들은 암 때문에 일찍 다 죽었다. 내 남편도 올해 초 담낭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며 "그나마 대책이라고 하면 산단 쪽에서 경로당에 공기청정기 놔주고 음료수 몇 박스 사 들고 오는 게 전부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공기가 나쁜데, 주민들이 죽어 나가도 바뀌는 게 없다"고 말했다.
◆"집값 떨어진다"… 무기력만 남은 마을
주민들이 악취 피해를 호소하는 가운데 이곳에서는 깊은 무기력도 감지됐다. 취재 도중 만난 주민 상당수가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하는가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취재를 막아서는 주민도 있었다.
앞서 만난 김한숙 씨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윤차숙(67) 씨는 취재진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윤 씨도 김 씨 집 인근에서 수십년을 살아 온 비산7동 토박이다.
"우리 어머니가 생전에 경로당 회장을 하면서 구청에 찾아가 악취 보상을 요구하고 시위를 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희망고문 없이 살던 대로 살게 해달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대구시가 추진하는 염색산단의 대구 군위군 이전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김한숙 씨는 "염색산단 이전이 이번에 처음 나온 얘기도 아니고 계획대로 잘 될 것으로 보지 않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라며 "30년 넘게 여기서 살았고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있겠나. 나 같은 주민들이 동네에 많은데 산단을 또 다른 곳으로 옮기기보다는 차라리 여기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이 좀 더 고통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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