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팽창 과정에서 도심에 자리잡게 된 노후산단 문제는 대구 만의 고민이 아니다. 대구염색산업단지보다 앞서 공업지역 인근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선 부산 사상공단과 경기 반월·시화공단도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곳이다.
대구처럼 단속 인력 부족과 전문성 부족이라는 문제를 겪었지만 주민 참여와 행정 시스템 개선 등 각자의 방식으로 개선에 나선 곳이 있다. 염색산단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들여다 봤다.
◆민원인에서 '전문 모니터링 요원'으로…부산 학마을공동체
12일 방문한 부산 사상구 학장동. 이곳은 부산 사상공단과 주거단지가 직선거리로 약 1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염색산단 인근 주민들처럼 악취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이 적잖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악취는 대부분 도금공장과 주물공장에서 나왔다. 쇠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염산이 악취를 유발해서다.
화학약품 냄새 뿐 아니라 생선 비료 공장도 적잖아 음식물을 찌는 과정에서 나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도 적잖다. 금호강을 타고 악취가 넘어오는 대구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바람이 두 개의 산 사이로 집중돼 주거단지로 불어오는 구조다.
2천년대 초반 학장동에서 10여명의 주민으로 출발한 '학마을공동체'는 노후산단과 주민 사이 갈등을 푸는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현재 단순한 주민 자치조직을 넘어 사상구청의 환경모니터링센터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마을공동체 회원들은 환경 문제 유발 가능성이 높은 4개 코스를 주 3회 순찰하며 '악취 모니터링 일지'를 작성한다. 일지에는 악취 강도와 종류 뿐 아니라 송풍기 벨트 회전 여부, 세정탑 살수 가동 소음 확인 등 시설 상태까지 상세히 담긴다. 악취 모니터링보다는 체계적인 데이터 수집에 가깝다.
학마을공동체 회원 윤순이(61) 씨는 "주민들이 분기별로 제출하는 기록지는 관청이 문제 사업장을 특정하고 행정 조치를 취하는 객관적 근거로 활용된다"며 "처음 주민들끼리 나섰을 때보다 구청과 함께 활동하면서 모니터링 효과도 극대화됐다. 구청이 제공한 복장을 갖추고 활동하다 보니 업체도 주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국비 확보라는 실질적 성과까지 끌어냈다. 주민들은 축적한 현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악취 저감 시설 설치를 제안했고, 사상구청이 적극 호응했다. 주민 제안은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5억원의 국비 확보로 이어졌다.
이곳 나을순(70) 공동대표는 "구청 직원과 함께 서울까지 올라가서 공모 신청을 하는 등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행안부 실사에서도 주민들이 직접 안내하며 실태를 알렸고 국비 확보에 성공했다"며 "환경 문제는 주민이 가만 있어서는 안되고 최대한 관계기관과 함께 협동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순환보직 없는 '전문관' 제도…행정 전문성·연속성 주효
학마을공동체 활동이 성과를 낸 배경에는 주민 뿐 아니라 행정의 '전문성'과 '연속성'도 있었다.
부산 사상구청은 2013년부터 악취·화학 박사 학위 소지자를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 환경통합관제센터에 투입했다. 통상 1, 2년 단위로 담당자가 교체되는 공무원 조직과 달리 10년 넘게 환경 전문가가 한 업무를 맡으면서 적극 대응이 가능한 구조다.
올해로 13년째 사상공단 환경 관리를 맡고 있는 노다지 주무관은 악취 및 화학성분 관련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로 '대기확산 모델링'이라는 과학적 기법을 도입했다. 사상구 일대의 미세 지형과 풍향 데이터를 분석해, 악취가 확산되는 경로를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악취 민원이 잦았던 한 도금 공장의 경우, 고가의 설비 교체 대신 굴뚝 높이를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해 악취를 대거 줄였다. 대기 정체층 위로 오염물질을 배출시켜 확산을 막는 공학적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노 주무관은 "효과적인 정책을 개발하려면 오랜 기간 문제를 지켜봐야 하고 정책 개발까지 이어지려면 3, 4년은 족히 걸린다. 일반적인 조직의 인사 루틴에 맞출 것이 아니라 업무 특성을 반영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흥의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는 민관 협력을 시스템으로 안착시켰다. 시흥시는 2004년 주민과 시청, 환경부, 산업계가 참여한 시화지구 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꾸려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협의회는 대기개선 특별기금을 조성, 악취 방지 시설을 설치하는 기업에 설치비의 최대 90%를 지원했다. 시흥시는 설치에 앞서 전문가 그룹을 투입, 공정 진단과 맞춤형 저감기술도 전수했다. 이후에는 부산의 학마을공동체처럼 주민들로 구성된 '대기질 개선 소위원회'를 꾸려 사업 진행 상황을 상시 점검하고 있다.
◆"악취 피해 가장 큰 건 결국 업체"…선순환 구조 이어져
이날 만난 부산 사상공단 업체들은 결국 환경문제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 곳은 가장 가까운 공장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업체들은 빡빡한 악취 모니터링 환경 속에서 악취 저감 시설 투자를 필수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환경 개선에 나서는 업체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노후산단 내부에서도 마냥 외면하기 어려운 선순환 구조도 생겼다고 했다.
이곳 도금업체 동명특수금속은 5년 전 가스 배출구에 세정집진시설을 설치하는 등 노후시설을 전면 교체했다. 계면활성제 제조업체 부경텍(가명) 역시 6차례의 공정을 거쳐 오염물질을 연소시키는 고도화된 설비를 갖췄다.
박연걸 부경텍 대표는 "주민들이 입는 피해도 문제지만 결국 환경 문제와 가장 가까운 건 주변 업체들이다. 수억 원의 설치비와 유지 관리비가 발생하지만 불가피한 투자"라며 "다만 영세 소규모 업체의 경우 자력으로 고가 장비를 도입하기 어려운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도 부산과 경기 시흥시 사례처럼 민관 협력 등을 통해 단속 인력 부족 문제를 푸는 한편 전문성 확보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명균 계명문화대학교 스마트환경과 책임교수(대구녹색환경지원센터 기업환경지원부장)은 "염색산단 인근 악취와 폐수 단속을 구청이 도맡고 있어 대책이 주민 체감에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주민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전문성 확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단순히 염색산단을 악취 관리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악취 빈도가 높은 지점을 특정해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 많은 뉴스
"안귀령 총구 탈취? 화장하고 준비" 김현태 前707단장 법정증언
[단독] 정동영, 통일교 사태 터지자 국정원장 만났다
李대통령 "종교단체-정치인 연루의혹, 여야 관계없이 엄정수사"
"'윤어게인' 냄새, 폭정"…주호영 발언에 몰아치는 후폭풍
대구 동성로 타임스 스퀘어에 도전장…옛 대백 인근 화려한 미디어 거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