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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의 每日來日] 신 독립운동, 청년들의 빼앗긴 들에 봄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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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파란의 을사년이 저물고 2026년 병오년 설날이 다가온다. 지난 1년간 교회 청년부 사역자로서 20대 청년들을 상대로 설교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윤석열의 내란 쿠데타를 여전히 '계몽령'이라 주장하며 '윤 어게인'을 외치는 청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려 과반을 넘어 다수인 듯 보였다. TK지역의 특수성 때문일까? 전국적 통계에서도 20대가 70대보다 더 극우적 성향을 보이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2·8을 넘어 3·1까지, 매년 이 무렵이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온 생애를 던졌던 그 선배들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대다수가 20대 청년들이었음을 회상하며 오늘날의 청년들과 비교하게 된다. 120년 전 국권 상실의 치욕 앞에서 이 땅의 청년들은 분연히 일어났다. 1906년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상설의 나이는 36세였고, 막내 이위종은 19세였다. 1908년 장인환과 전명운 열사가 친일파 스티븐슨을 저격했을 때 그들의 나이는 각각 32세와 23세였다. 1909년 안중근 의사는 30세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고, 같은해 이재명 열사가 이완용을 척살 시도한 나이가 22세였다.

스크랜튼 선교사가 세운 상동교회에는 1897년 상동청년회가 조직되었고, 이회영(30), 이동녕(27), 양기탁(26), 이동휘(24), 전덕기(21), 주시경(21), 안창호(18), 유동렬(18) 등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상동청년학원은 삼남과 서북 지방을 넘어 북간도까지 교사를 파송해 한글과 국사를 가르치며 민족교육의 토대를 만들었다. 1905년 총독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가 상동청년회부터 해산하자 1907년 지하조직 신민회를 만들었고, 이를 색출하기 위한 조작극이 105인 사건이었다. 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청년세대들은 국내외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1919년 2·8 독립선언을 기초한 이광수는 27세였고, 선언을 낭독한 최팔용은 25세였다. 3·1운동 당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정재용과 보성고보의 김원벽 역시 23세의 청년이었다.

비폭력 저항운동으로서 역사적 신기원을 이룬 3·1운동은 종교 연합운동이며 청년학생 운동의 성격도 있었지만 500년 조선의 역사 속에 숨죽이고 억압받던 여성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역사의 전면에 떠오르게 만든 큰 의미가 있다. 함흥 영생여고에서 만세를 부르며 달려나와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난 후 상하이로 건너가 박헌영의 아내가 되어 파란의 인생을 살았던 미모의 여학생 주세죽(21)을 비롯하여, 만세운동을 사전에 조직하고 선언서를 배포하는 역할을 하였던 이화학당의 주동자 김마리아(28)와 개성지역의 조직책 권애라(23), 심명철(31), 어윤희(38), 기생조직을 이끌었던 김향화(22), 예술인조직을 이끌었던 나혜석(23), 정동 교회 청년회 학생 유관순(17) 그리고 그의 스승 하란사(30) 등이 있었다. 그 시절 2030은 역사의 중심이었고, 역사를 바꾸는 주역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역사가 되었다.

그런데 왜, 무엇이 오늘날 이 시대의 청년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청년의 때에는 눈앞의 이익에 연연치 않고 옳고 그름의 가치를 따라 이상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3·1운동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30년 전 까지만 해도 그것이 청년다움의 특징이었다. 불의에 항거하고 사회의 모순을 구조를 바꾸어 개혁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2030세대에게는 그 같은 논의는 영적 사치에 속할 뿐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살아내야 할 가혹한 현실이 있을 뿐이다. 일자리가 없다. 집도 없다. 그러니 결혼도 않고 자녀도 낳지 않으려 한다. 한국 사회의 태가 닫히고 있는 것이다. 태가 닫히면 그 가정과 사회와 국가는 망하게 되어있다.

지난 50년간 서울 땅 값은 1,000배로 올랐다. 주요 경제와 문화 시스템이 서울에 몰린 기형적인 나라가 되었다. 그 동안 60~70대 이상의 노년층이 국토의 대부분과 국부의 70%이상을 차지했다. 청년세대는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서울 땅 1평을 얻기 힘든 사회가 된 것이다. 120년 전 청년 독립 운동가들이 피 흘려 되찾은 국토에서 오늘날 청년은 다시 땅을 빼앗긴 식민세대가 되었다.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남북관계도 바늘구멍을 찾으려 하고 있다. 남북경협이 일어나고 북방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야 청년 일자리의 근원적인 문이 열릴 것이다. 그 땅들을 다시 청년세대들에게 돌려줄 신 독립운동에 성공할 것인가? 빼앗긴 들에 봄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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