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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노경석] 두 얼굴의 한국 경제, 정책 시선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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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석 경제부장
노경석 경제부장

지금 한국 경제에는 두 개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하나는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를 경신하고, AI 관련 투자가 넘쳐흐르며, 대기업 실적 발표장에서 환호성이 터지는 세계다. 다른 하나는 창업 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평균 1억원이 넘는 빚을 떠안고 사라지는 세계다. 이 두 세계는 같은 나라 안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있지만, 서로의 온기는 조금도 전달되지 않는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을 지난해보다 높여 잡았다. 숫자만 보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성장의 과실이 누구에게 떨어지느냐가 문제다. 반도체 한 품목이 수출을 이끌고, 그 수혜는 소수의 대기업에 집중된다. 이것은 낙수가 아니다. 수직으로 솟구치다 하늘에서 증발해 버리는 물이다.

팬데믹 이전 한국의 민간 소비는 꾸준히 2%대 후반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출이 역대 최대를 갈아치우는 동안 소비는 왜 살아나지 않는가. 가계가 벌어들이는 돈보다 갚아야 할 빚이 더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가계의 빚 총액은 사실상 2천조원 문턱에 서 있다. 이 무게를 지고 지갑을 열라는 것은 물에 잠긴 사람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지난해 정부는 12조원이 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뿌렸다. 쿠폰이 지급된 그달, 마트 계산대 앞에 줄이 섰고 전통시장에 사람이 돌아왔다. 하지만 쿠폰의 유통기한이 끝나자 골목은 다시 조용해졌다. 폐업 자영업자들이 받아간 실업급여 총액은 쿠폰이 지급된 그 이후에도 늘었다. 실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나라 곳간을 마구잡이로 털어 소비쿠폰을 뿌리고도 1%에 턱걸이했다. 이것이 단기 처방의 본질이다. 구멍난 댐을 손으로 막는 것이다.

2월 소비자물가는 숫자상으로 안정권이라지만, 밥 한 끼 외식 비용은 여전히 무겁다. 음식점과 숙박 물가는 3%대로 뛰고 있다. 체감물가와 공식 지표의 괴리는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국민이 정부의 물가 발표를 냉소적으로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미국-이란 전쟁으로 널뛰는 유가와 환율은 이달 물가를 더욱 뛰게 할 게 뻔하다.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물가 상승의 끝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정부와 여당은 당장 먹고사는 데 필요한 정책과 법안보다 검찰 개혁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내수 침체의 구조적 원인을 직시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당장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지에 대한 셈법 계산에 더 빠져 있다.

가계의 실질 소득을 올리는 것, 빚에 기댄 성장 방식을 바꾸는 것, 자영업 생태계를 단순한 생계 지원이 아닌 지속가능한 경제 주체로 재설계하는 것-이것들은 선거를 앞두고 꺼내기 불편한 의제가 됐다.

고작 꺼내 든 것은 서울과 수도권 집값 잡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전부다. '집 사지 말고 주식을 사라'는 시그널일 뿐이었다. 주식시장이 활황이 된다고 소비가 늘어나고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지는가? 양극화만 더욱 심해질 뿐이다.

그나마 버텨 주던 반도체 수출도 장담할 수 없어졌다. 내수가 무너진 상태에서 수출까지 꺾인다면, 그것은 경기 침체가 아니라 경제 위기라고 불러야 한다. 반도체 공장 굴뚝의 연기가 짙을수록, 골목의 불빛은 하나씩 꺼지고 있다. 두 얼굴의 경제를 직시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 나라 경제 정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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