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이반'은 레프 톨스토이가 러시아 민담(民譚)을 바탕으로 지은 소설이다. 삼형제와 악마가 얽힌 이야기다. 막내 이반은 바보스럽다. 세상은 이반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그 어리석음은 이반의 양심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제정러시아의 폭력과 탐욕을 비판했다. 농민을 짓밟는 권력과 힘을 숭상하는 국가의 논리를 조곤조곤 반박했다.
이반은 악마의 계책을 물리친다. 악의(惡意)가 선의(善意)에 굴복한 것이다. 이반은 악마에게 귀리로 군대를 만드는 마법을 배운다. 이반이 만들어 준 군대를 내세워 출세한 형은 군대를 더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이반은 거절한다. "형님 병사들이 사람을 때려죽였기 때문이에요. 저는 병사들이 노래나 부르는 줄 알았는데…."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군대를 만들었다니, 무슨 꿈같은 소리인가. 하나, 웃고 넘길 일은 아니다. 톨스토이는 묻는다. 국가와 군대가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다면, 이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반의 '바보 행진'은 이어진다. 이반은 공주의 병을 고쳐 주면 왕의 사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궁궐로 향한다. 그에겐 묘약(妙藥)인 나무뿌리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길가의 병든 거지에게 나무뿌리를 내준다. 고민은 없었다, 그저 양심을 따랐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 돈과 권력 앞에서 망설임 없이 약자를 밀쳐 내지 않는가.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년 작)은 억압과 낭만이 공존했던 시대의 초상(肖像)이다. 철학과 학생 병태는 미팅에서 불문과의 영자를 만난다. 영자, "까뮈의 '이방인' 읽어보셨어요?" 병태, "읽어봤죠." 영자, "어머머. 실력파시네요. 잘됐다. 초면에 부탁 하나 드려도 되죠?" 병태, "뭔데요?" 영자, "리포트 좀 써 주세요." 그렇게 인연이 됐다. 병태는 영자에게 결혼하자고 한다. 영자는 철학과 출신은 전망이 없다며 선을 긋는다. 그러나 영자는 순수한 병태가 좋다. 두 사람은 사랑에 서툴렀고, 세상에 무력했다. 그들의 서툶은 타인과 세상에 무해(無害)했다. 능력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숨막히는 오늘, 그 시절의 '바보스러움'은 숨통을 틔운다.
난득호도(難得糊塗)는 중국인들이 가훈으로 즐겨 쓰는 사자성어다. '호도'는 '풀칠'(풀칠하면 바탕이 가려짐)을 말하며, 똑똑함을 감추는 것을 상징한다. 즉, 난득호도는 '똑똑함을 감추고 바보처럼 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대교약졸(大巧若拙), 대변약눌(大辯若訥)이 나온다. 뛰어난 기교는 서툴러 보이고, 달변은 더듬는 듯하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한 걸음 물러서 타인의 고통을 먼저 살핀다.
정치는 권력을 휘두르는 권리가 아니라, 권력을 절제하는 윤리(倫理)여야 한다. 군대를 더 만들어 달라는 형의 요구를 거절한 이반의 태도는 낭만이 아니라 원칙이다. 폭력을 거부하는 선택, 약자를 먼저 돌보는 결단, 눈앞의 이익을 내려놓는 용기, 이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넘친다. 그러나 총명함이 공동선을 향하지 않으면, 탐욕의 칼이 된다. 얄팍한 재주를 믿고 날뛰는 자들이 많다.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세상을 속이고,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다. 그 끝은 참담하다. 욕망에 휩쓸려 패가망신(敗家亡身)하고, 권력에 눈멀어 나라를 망친다. 세상을 이끈다고 떠드는 자들이여, 착각하지 마라. 세상을 지키는 자는 바보 이반들이다.































댓글 많은 뉴스
대구시장 이러다 '4파전'?…갈라진 보수 틈 비집는 '김부겸 바람'[금주의 정치舌전]
이진숙 "기차 떠났다, 대구 바꾸라는 것이 민심"…보궐선거 출마 사실상 거절
李대통령 지지도 61.2%로 1%p 하락…"고환율·고물가 영향"
"선거비용 보전도 못할까봐"…국힘, 이대론 득표율 15%도 위태롭다?
"바람처럼 살겠다"…홍준표, 정치권 향해 "진영논리 멈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