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대왕에 의해 건설된 도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dynasty)의 시작점이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길목에서 번성했던 이 도시에 찬란하게 피어났다가 짧게 스러지고 마는 붉은 양귀비꽃 같은 삶을 살았던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ra VII)가 있었다. 짙은 아이라인과 검은 머리칼 그리고 황금빛으로 번지는 얼굴로 각인된 그녀는 미인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반면,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를 만나기 위해 양탄자 속에 몸을 숨긴 채 궁전으로 들어갔다는 일화는 그녀의 담대함을 보여준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정치와 감정을 동시에 움직일 줄 알았던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의 마지막을 목도(目睹)한 파라오였다. 그래서일까 알렉산드리아 여행은 한 여인의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는 파로스 등대(Pharos Light house)가 있었다. 거대한 거울로 햇빛을 반사해 적의 배를 태웠다는 등대는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그 전설 같은 이야기 위에 카이트베이 요새(Fort Qaitbey)가 세워져 바다를 지키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이 항구로 들어왔을 수많은 배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로마의 두 인물, 카이사르(Caesar)와 안토니우스(Antonivs)도 있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지중해가 실어 온 그들을 선택하여 이집트의 운명을 걸었다. 지중해 어딘가에는 클레오파트라의 궁전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수중 고고학자들이 왕궁을 계속 찾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의 명성을 말해주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찾아갔다. 건물은 바다를 향해 기울어진 원반의 모습이었다. 지중해에서 막 떠오르는 태양처럼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지를 담은 듯했다. 도서관 외벽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낯선 기호들 사이에서 한글을 발견한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또 다른 한글을 찾기 위해 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관람자'가 아니라 보물찾기하는 '참여자'가 되어 있었다.
우리 뇌는 필요 없는 정보는 과감히 걸러내지만, 자신과 연결된 정보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는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로도 설명할 수 있다. 시끄러운 공간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이나 관심 있는 이야기에만 귀가 쏠리는 현상처럼, 광고 역시 개인과의 접점이 생기는 순간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 사례로 넷플릭스(Netflix)의 콘텐츠 썸네일(Thumbnail)의 개인화를 들 수 있다. 이용자의 시청 이력과 선호 데이터를 기반으로 같은 작품이라도 사용자마다 다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각자의 취향에 먼저 말을 건다. 이는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를 자극해 클릭과 시청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정교한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나와의 거리'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단 하나, '이건 나와 관련 있다'라는 감각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라는 낯선 곳에서 한글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신호가 되었다. 한글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멈추고, 바라보고, 기억하려 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 원반형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공간을 환하게 채우고 있었다. 차곡차곡 채워진 책들과 곳곳에 놓인 조각상들, 그리고 조용히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들.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풍경이었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도서관이 있었던 자리로서의 의미가 크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us) 1세는 "지구에 있는 모든 민족의 책을 모으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양피지로 70만 두루마리, 요즘 책 기준으로는 약 1억1천만권에 이르는 인류의 지식이 이곳에 쌓였다.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활발히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은 이 지성의 전당을 불태웠다. 그 불길 속에 사라진 것은 종이가 아니라 고대인들의 사유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의 어딘가에 클레오파트라 7세가 있었다. 그녀는 이집트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영민함을 갖추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를 지켜 내려 했던 그녀의 지략은 도서관의 지식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녀가 이 도서관에 앉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지성은 분명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공기 속에서 길러졌을 것이다.
지중해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홍해를 따라 흘러온 보이지 않는 부의 물줄기가 있었다. 홍해에 위치한 후르가다(Hurghada)는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호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이집트 휴양지로 유명하다. 햇빛에 따라 홍해는 투명한 푸른빛을 띠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에메랄드로 변하기도 했다. 나는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천천히 홍해 안으로 들어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호초와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바닷속으로 잘게 부서져 내려오는 빛을 발견하고는 숨이 차올라 물 위로 올라왔다. 해변으로 돌아와 말을 타며 홍해를 감상하기로 했다. 사막 끝 모래가 홍해로 밀려와 말의 발굽이 바닷물을 가르며 절벅절벅 소리를 냈다. 말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바닷물이 튀고 다리와 옷자락을 젖었다. 조금 낯설었던 망설임이 즐거움으로 부서졌다. 나는 잠시 말을 늦추고 물 위에 보였다가 사라지는 발자국을 내려다보았다. 금세 사라지는 것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애쓰는 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해 질 녘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홍해 바다 서쪽으로 조금 이동하니 나일강과 홍해 사이에 펼쳐진 동부 사막이 나타났다. 이곳은 일반적인 모래사막과는 다른 지형으로 바위산과 계곡이 거친 풍경을 만들어 냈다. 지프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배두인(Bedouin) 마을에 도착했다. 마침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동쪽으로는 우유빛 보름달이 떠오르고 서쪽으로는 붉은 태양이 지고 있었다. 밤의 시작과 낮의 끝이 동시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사막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무엇이든 더 또렷하게 보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광고 속에서도 사막을 찾아볼 수 있다. 2025년 아디다스(Adidas)는 사막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활용했다. 전통적인 광고판 없이 메시지를 전달했다.
최근 패션 광고도 사막을 자주 선택한다. 불필요한 것이 없는 배경이 옷과 사람을 더 또렷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품의 장점을 직접 설명하는 기존 광고의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 스스로에게 해석을 유도하는 컨텍스트 마케팅(Contextual Marketing) 방식이다. 또한 사막은 현대 설치 미술이 가장 솔직해지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1997년 사막의 숨결(Desert Breath)은 이집트 홍해 인근 사막에 조성된 대규모 작품이었다. 인위적 재료 없이 사막의 모래만을 사용하여 풍화와 침식에 따라 서서히 사라지도록 설계되었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희미해지는 형태를 시간의 흐름에 맡겨두는 것이다. 사막에서는 예술도 광고도 하나의 방식으로 남는다. 비어 있는 세계 위에 단 하나의 이미지를 새기는 일, 그것은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배두인들이 이끌어주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잠시 거닐었다. 그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 그들이 내어준 따뜻한 차를 마셨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지프차 뒤로 흩날리는 흙먼지와 사라져가는 저녁 빛이 겹치며 이집트 사막 특유의 이질적인 풍경을 만들어 냈다.
여행의 마지막은 남쪽으로 더 내려가 나일강 위에 떠 있는 듯한 필레 신전(Philae Temple)이었다. 나일강 위에 자리한 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Isis)를 위해 지어진 성소로, 나일의 흐름 속에서 유난히 고요한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크게 확장되었으며 그 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신전 벽에는 클레오파트라 7세가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그 장면 앞에서 나는 문득 이곳이 그녀와 안토니우스가 서로를 선택했던 시절, 사랑과 정치가 교차하던 시간과도 겹쳐 보였다. 기록은 그것을 신혼여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 위에 떠 있는 신전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마치 한 시대의 사랑이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의 시선과 믿음을 이끌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하나의 상징으로 세웠던 클레오파트라 7세를 2004년 펩시(Pepsi)가 3명의 팝스타로 다시 불러냈다. 상징적인 브랜딩(Iconic Branding)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권력과 카리스마는 비욘세(Beyonce), 대중적 영향력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반항적 에너지는 핑크(Pink)로 치환했다. 펩시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움직이는 힘으로 인식하게 했다. 나는 필레 신전이 내어주는 그늘을 따라 걸으며 끝나지 않은 상징이 된 클레오파트라를 그려보았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외벽의 한글을 떠올리며, 나는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미래로 흐른다는 감각을 느꼈다. 책은 정보를 넘어서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로서 여전히 살아 있다. 지중해가 보이는 도서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나는 책 대신 나 자신을 읽었다. 클레오파트라의 흔적은 지중해와 홍해를 지나 나일강 필레 신전에서 더욱 또렷해졌고 스쳐 간 모든 장면들은 또 다른 이야기로 남아 나를 부른다. 오래된 바람이 불어오듯이 그 기억은 조용히 나를 향해 돌아온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댓글 많은 뉴스
역대 '보수의 심장'에 불어닥친 민주당…김부겸 '변화의 바람'
李대통령 "무신사, '탁 치니 억 하고 말라'? 사람 탈 쓰고 이럴 수 있나?"
김부겸 "민주당 폭주, 가장 강력 제어하는 브레이크 될 것이라 자신"
李대통령 "한국인 나포 네타냐후 체포영장 검토"
'대구 택시 기본요금 500원 오르나'…업계 검토 마무리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