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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르포 "청구 취지가 뭔가요"… 답답한 나홀로 소송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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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곳곳에서 마주친 혼자 싸우는 시민들, "전자소송인지 종이소송인지도 모르겠어요"

소송 서류를 손에 쥔
소송 서류를 손에 쥔 '나홀로 소송' 당사자들이 민사 소액 법정을 가득 메우고 있다.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 소액사건(소가 3,000만 원 이하)에서 원고·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비율은 81%에 달한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지난 3일 오전 11시, 대구지방법원 신관 지하 1층 종합민원실 내 사법접근센터. 60대 여성 최모(동구 신암동) 씨가 문을 밀고 들어섰다. 손에는 소송 관련 메모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상담위원 앞에 앉아 한숨부터 내쉬었다. "전자소송을 해야 할지 종이소송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청구취지와 청구원인, 입증 방법은 어떻게 작성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변호사 선임이 어려운 나홀로 소송인들이 법원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사법접근센터 관계자는 "고령층 상담 비중이 높은데, 이분들은 서류 제출 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단계마다 헷갈려 하신다"고 했다. 전자소송 포털을 이용하려면 공인인증서나 간편인증이 필요한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이 첫 관문에서부터 막힌다. 복잡한 절차를 홀로 감당하다 포기하는 경우도 나온다.

최 씨는 소장 접수부터 판결까지 소송의 전체 흐름을 설명 들은 뒤 대구지방법원 인근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무료 법률상담과 소송서류 작성 지원을 받았다. 공단 관계자는 "상담 횟수에 제한이 없어 소송이 끝날 때까지 전 과정을 공단과 함께 진행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신관 지하 1층 종합민원실. 60대 여성 최모 씨가 서류 작성대 앞에 서서 소송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변호사 선임이 어려운 나홀로 소송인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이날 최 씨는 사법접근센터에서 소송 절차를 안내받은 뒤 대한법률구조공단으로 향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지난 6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신관 지하 1층 종합민원실. 60대 여성 최모 씨가 서류 작성대 앞에 서서 소송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변호사 선임이 어려운 나홀로 소송인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이날 최 씨는 사법접근센터에서 소송 절차를 안내받은 뒤 대한법률구조공단으로 향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밤새워 쓴 준비서면, 챗GPT한테 물어봤다"

같은 날 변론기일에 참석하러 법정동으로 들어온 50대 여성 이모(서구 비산동) 씨는 임차보증금 2,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해 소송을 냈다. "변호사비가 500만 원이라는데, 보증금도 못 받은 상황에서 추가로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 씨는 3주 전 피고 답변서를 받고 반박 준비서면을 직접 쓰느라 밤을 새웠다. "법률 용어가 낯설어 유튜브를 반복해서 봤다. 챗GPT에 이 문장이 맞는지 물어보기도 했다"는 말에 법정 안팎에서 홀로 싸우는 나홀로 소송인의 현실이 담겼다.

민사 소액 법정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파키스탄 출신 무함마드(32) 씨는 2,500만 원의 임금체불 소송을 내고 첫 변론기일에 출석했지만, 판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한국어가 서툴러 재판 진행 자체가 막혔다. 판사는 사법통역사의 도움을 받도록 했다.

나홀로 소송인의 하루는 고단하다. 소장 접수와 송달, 재판부 지정, 답변서 검토, 변론기일 전 준비서면 제출까지 절차 하나하나가 낯설고 두렵다. 법원 전자소송 포털과 법률구조공단이 절차 안내를 제공하지만, 사건의 쟁점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가장 큰 위험은 패소다.

법무법인 가나다 송승우 변호사는 나홀로 소송 급증의 부작용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다. 그는 "변호사 없이 진행되는 소송은 변론 절차가 지연됨으로써 상대방 당사자뿐 아니라 재판부의 업무 부담까지 가중시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변론 내용을 AI에 의존하는 부분에 대하여 "AI가 알려준 내용이라도 법률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법원에 제출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자칫 돌이키기 어려운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 3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법정동 제21민사단독 41호 법정 입구. 오전 10시 20분부터 오후까지 줄지어 잡힌 사건번호와 원고·피고 이름이 재판 안내 모니터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이날 41호 법정에만 오전 한 시간 남짓 사이에 10건 이상의 사건이 잡혔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지난 3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법정동 제21민사단독 41호 법정 입구. 오전 10시 20분부터 오후까지 줄지어 잡힌 사건번호와 원고·피고 이름이 재판 안내 모니터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이날 41호 법정에만 오전 한 시간 남짓 사이에 10건 이상의 사건이 잡혔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법원의 딜레마…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른바 '판사 팁' 논란이 불거졌다. 나홀로 소송인이 재판에서 불리해지자, 판사가 당사자 스스로 주장하지 않은 사실을 슬쩍 알려주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배려처럼 보이지만, 민사소송의 핵심 원칙인 변론주의에 어긋난다.

변론주의란 사실관계와 증거는 당사자가 스스로 주장하고 제출해야 하며, 판사는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내용을 직권으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중립 기관으로서 한쪽을 도울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 그 사이에서 판사도 딜레마를 안고 법정에 선다.

이종민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구에서만 나홀로 소액사건 변론기일이 매주 200~300여 건 정도 진행된다"고 했다. 그는 "법률 전문가 눈으로 보면 조금만 보완해도 당사자가 승소할 수 있는 케이스가 있다"면서도 한계를 분명히 했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의 적절한 석명권(재판장이 주장이나 증거가 불분명한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당사자에게 질문하거나 입증을 촉구하는 소송지휘권) 행사를 넘어 당사자가 스스로 주장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않은 사실을 판사가 직접 끌어내 주장하거나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변론주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나홀로 소송, 이렇게 실패한다 — 6가지 유형

① 소멸시효 놓침 — 청구 가능 기간을 지나 소장 제출, 각하

② 입증 부족 — 증거 미제출로 패소

③ 청구취지 오류 — 금액·피고 특정 오류로 보정 명령 반복

④ 기일 미출석 — 변론기일 불출석으로 의제 자백 또는 기각

⑤ 항소 기간 도과 — 판결 후 2주 내 항소 미제기로 확정

⑥ 집행 미비 — 승소 후 강제집행 절차 몰라 채권 회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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