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기획·제작한 책 <지상대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을 통해 대구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따라간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4부에 걸쳐 풀어낸다. 3부는 근대 산업의 태동부터 공업 단지 조성, 상업 중심지의 변화, 그리고 주거와 산업의 재배치까지 경제 활동의 공간적 변천사를 다룬다. (편집자 주)
대구는 야금야금 덩치를 불렸다.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구 도심부가 많은 인구를 전부 수용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된 거주 조건을 갖추지 못한 불량 주택에 지내는 이들도 크게 늘어났다. 땅도, 주택도, 사무실도, 교통망도 모두 부족해지는 때였다.
새로운 요구에 따라 도시의 구조도 재개편된다. 이 가운데 토지를 개발하며 개인이 과도한 이익을 남기거나, 제대로 된 계획 없이 토지가 난개발 되는 걸 막기 위해 '공영개발'의 개념을 도입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고, 불량한 지구를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었다.
1980년대 이후 대구장기종합개발계획에 공영개발의 개념이 포함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다. 대상지는 안심과 월배, 불로, 지산, 송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에 몰려있던 대구시의 중심이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형태로 개편 된다.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방대한 면적을 차지하는 공업단지의 효능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2, 3차 산업을 키우기 위해 업무단지가 더욱 필요해지는 시점이었다. 이곳 역시 재개발의 대상으로 점찍혔다.
1993년 대구시는 북구 침산동과 고성동 일대 15만5천평 일대를 업무단지로 개발하기로 한다. 제일모직이 5만2천평, 대한방직이 6만평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다.
용도를 변경해 사무실과 전문상가, 호텔, 백화점과 공원, 주차장 등 업무지원 시설을 입지시키려 했다. 이에 발맞춰 대한방직은 비산동 염색산업단지로 공장을 이전하고, 제일모직은 구미로 이전했다. 제일모직 자리에는 2000년대 초 오페라 하우스가 들어오고, 2015년 창조경제 혁신센터 및 삼성창조캠퍼스가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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