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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아웃도어 라이프]경북 영양에서 보낸 1박2일…깊은 오지 속살에 마음을 빼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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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 숲은 단풍과 눈이 어우러진 풍경을 으뜸으로 꼽지만, 4월 초순의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김도훈 기자.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 숲은 단풍과 눈이 어우러진 풍경을 으뜸으로 꼽지만, 4월 초순의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김도훈 기자.

이 코너를 연재하면서 늘 마음이 쓰였다. 독자들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찾다보니 매번 대구경북을 벗어난 게 못내 미안했다. '이번엔…'하며 지도를 보다 '여기다!"를 외쳤다. 경북 영양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오지인 영양은 장대한 숲이 일품이다. 수비면 검마산 자락엔 유명한 죽파리 자작나무숲이 있다. 일월면에 있는 일월산은 고요한 적막 속에 숲을 즐기고 일출을 맞기에 그만이다. 자작나무 숲을 걷고 일월산 정상 일자봉 해맞이 전망대에서 백패킹을 하며 오지의 숲에 푹 젖었다.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 숲은 단풍과 눈이 어우러진 풍경을 으뜸으로 꼽지만, 4월 초순의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김도훈 기자.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 숲은 단풍과 눈이 어우러진 풍경을 으뜸으로 꼽지만, 4월 초순의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김도훈 기자.

◆어디에도 없는 풍경…죽파리 자작나무 숲

영양은 멀었다. 대구에서 2시간.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산영덕고속도로를 갈아탄 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도 구불구불 이어진 지방도를 한참을 달려야 영양읍이 나온다. 이런 심리적 거리 탓에 영양 여행은 늘 뒷전으로 미뤄뒀던 터였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이 있는 검마산(1017m)은 영양군 북동쪽 수비면에 있다. 산이 뾰족하고 칼을 닮았다고 해서 '검마(劒磨)'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만, 생김새는 펑퍼짐하다. 지모신(地母神)을 의미하는 '검'에서 유래됐다는 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작나무숲은 검마산 남쪽자락에 있다. 영양읍에서 차량을 이용해 산길을 30분 넘게 달려야 이를 수 있는 오지 중 오지다.

죽파리 마을을 지나 자작나무 숲 입구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 자작나무 숲까지 전기 셔틀버스를 타고 10여 분 올라가야 '진짜' 자작나무 숲 입구다. 물론 걸어서 갈 수도 있다. 숲 입구까지는 약 4.7㎞쯤 되는데 임도로 돼있어 걷기에 좋다. 잠시 고민하다 숲을 오롯이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서틀버스를 떠나보낸다.

임도에 접어들자 오른 편으로 청량한 계곡 물소리가 이어졌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졸졸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자 서늘한 한기가 몰려온다.

오랜 시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덕분에 숲이 울울창창하다. 물박달나무·단풍나무·금강소나무 등 나무들 키가 훤칠하다. 경쾌한 물소리와 새소리,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은 오지의 산속 풍경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비경이다.

1시간쯤 가니 드디어 자작나무가 나타났다. 이곳 자작나무 숲은 1993년 산림청이 솔잎혹파리 피해 지역을 인공 조림하면서 탄생했다. 30㎝ 크기의 묘목이 서른 살 청년으로 자란 자작나무 숲으로 약 3㎞ 길이의 산책로와 임도가 이어진다. 안내판을 참고해 1코스로 올라가서 '전망데크'를 찍고 2코스로 내려오면 된다.

하얀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서자 마음까지 환해지는 느낌이다. 자작나무 숲은 단풍과 눈이 어우러진 풍경을 으뜸으로 꼽지만, 연둣빛 잎사귀들이 고개를 내밀기 전인 4월 초순의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숲 사이를 휘돌아 오르다 보니 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어느덧 목교를 지나 전망데크에 닿는다. 고도를 보니 841m. 제법 높이 올라왔다. 전망데크에서 비로소 조망이 열린다. 산사면을 빽빽하게 수놓은 자작나무들의 독특한 조형미를 감상할 수 있다.

자작나무는 무리 지어 자란다. 홀로 자랄 수 없기에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받쳐주고 서로 북돋워 준다고 한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기특한 나무다.

일월산 정상인 일자봉 해맞이 전망대는 탁 트인 시야가 일품이다. 김도훈 기자
일월산 정상인 일자봉 해맞이 전망대는 탁 트인 시야가 일품이다. 김도훈 기자

◆이토록 고요한 푸른 밤…일월산

영양읍 북쪽에 있는 일월산(日月山, 1219m)은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 해와 달을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영양군은 매년 1월 1일 일월산 최고봉인 일자봉 해맞이 전망대에서 해맞이 행사를 연다.

해맞이 전망대가 있는 일자봉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차량을 이용하면 KBS일월산중계소가 있는 정상 아래까지 단번에 오를 수 있다. 이곳에서 전망대까지는 쿵쿵목이 갈림길을 경유해 40분이면 닿는다. 윗대티, 선녀탕 등 등산로를 택하면 해맞이 전망대까지 3~4시간 정도 걸린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을 출발한지 50여분 만에 KBS일월산중계소 앞에 도착했다. 구름 잔뜩 낀 날씨 때문인지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주위가 벌써 어두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차에서 얼른 배낭을 꺼내고 발길을 재촉한다.

중계소에서 일자봉까지 9부 능선을 따라 좁은 길이 이어진다. 쿵쿵목이를 경유하는 1.5㎞ 등산로가 이동하기에 편하다는 지인의 말을 들은 터라 쿵쿵목이를 경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른 참나무 숲을 따라 25분쯤 걸으니 쿵쿵목이 갈림길이 나오고 10여분쯤 오르막을 오르니 바로 해맞이 전망대다.

해맞이 전망대는 탁 트인 시야가 일품이다. 굽이굽이 흐르는 동쪽 산줄기가 눈에 가득 담긴다. 비 예보가 있는 날씨 탓에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풍경이다. 청명한 날 이곳에선 동해바다와 그 너머 울릉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주위는 조금씩 푸른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고요한 숲속에 어둠이 내리는 걸 하염없이 바라봤다.

영양 서석지는 규모는 작지만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정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가 정원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김도훈 기자
영양 서석지는 규모는 작지만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정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가 정원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김도훈 기자

◆역사 유적은 덤…서석지와 산해리오층모전석탑

이튿날엔 새벽부터 내내 비가 내렸다. 산을 내려와 영양읍을 둘러보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대구로 내려오는 길, 입압면 연당리를 찾았다. 이곳엔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정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가 정원의 하나로 손꼽히는 서석지(瑞石池)가 있다. 이 정원을 만든 석문 정영방(1577~1650)은 퇴계 이황-서애 유성룡-우복 정경세로 이어지는 퇴계학파 삼전(三傳)의 제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예천에 살았던 석문 정영방은 광해군 때인 1610년부터 연당리에 초당을 짓고 살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정원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다 1636년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이후 가족과 함께 연당리로 이거해 주거공간인 수직사(守直舍),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정자인 경정(敬亭), 그리고 연못인 서석지(瑞石池)로 이뤄진 자신의 별서정원(別墅庭園)을 완성했다. 이곳을 통틀어 서석지로 부른다.

400년 된 은행나무가 기대선 서석지 입구로 들어서면 경정과 주일재가 사각 연못을 끼고 자리하고 있다. 연못엔 20개 가까운 서석(瑞石)이 있다. 신선이 노는 선유석(僊遊石), 구름 봉우리 모양 상운석(祥雲石) 등 이름처럼 재미난 생김새를 하고 있다. 인위로 배치했나 싶지만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돌이라고 한다.

서석지의 경정 대청에 앉기를 즐겼다는 정영방을 떠올리며 경정 대청에 올라 연못을 내려다본다. 낮은 담장 너머로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영양 산해리오층모전석탑 전경. 김도훈 기자
영양 산해리오층모전석탑 전경. 김도훈 기자

10년 전쯤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 들판에 외롭게 서서 그윽한 미감을 밪어 내던 석탑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영양의 유일한 국보 산해리오층모전석탑이었다.

드디어 낙동강 상류 반변천의 물길이 굽어 흐르는 곳에 서 있는 산해리오층모전석탑을 만났다. 탑 앞으로는 넓게 공간이 비워져 있고 탑 옆에는 가지를 뒤튼 늙은 느티나무가 있다. 그 뒤로 반변천의 물길이 깎아낸 갈모산 석벽이 우람하다. 석탑과 배경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깊은 공간감. 계절은 달랐지만 석탑의 아름다움은 충분했다.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그 공간에 서서 한참 동안 시간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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