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7월 8일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소식이 전해진다. 중앙정보부는 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에서 대규모 이적행위가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한국 교민과 유학생 194명이 대남 적화공작을 벌이다 적발됐다"고 했다.
중앙정보부는 이들의 이적행위가 1958년부터 시작됐다고 봤다. 또 "동백림의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 행위를 벌이고, 일부는 북한에 가거나 노동당에 입당했다"고 했다.
◆ 사상 최대 간첩단의 등장
이들 발표에 따르면 사상 최대 규모의 간첩단 안에는 대학교수와 의사, 예술인과 공무원 등 젊은 지식인들이 포함돼 있었다. 문화예술계의 윤이상과 이응로, 학계의 황성모, 임석진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문리대 민족주의 비교연구회도 정조준됐다.
사건의 발단은 1967년 4월 14일 벌어진 기자 실종사건이었다. 당시 서독 주재였던 이기양 조선일보 특파원이 체코슬로바키아에 입국한 후 사라졌다. 이 사건을 들은 임석진은 북한이 이기양을 납치했다고 판단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과거 대북 접촉을 한 사실이 드러날까 싶어 전전긍긍했다. 결국 5월 19일 임석진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수한다.
소식을 들은 박 대통령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을 불러 직접 수사를 지시했다. 중앙정보부뿐만 아니라 검찰, 경찰, 군 방첩대까지 모두 동원돼 합동 수사본부를 차린다. 6월 말까지 국내에서만 39명, 해외에서는 30명이 체포되며 수사는 속도를 냈다.
◆ 간첩단의 실체
동베를린에서는 정말로 이적 행위가 만연했을까. 이곳에서 한국 교민이 북한과 접촉한 것은 일부 사실이었다. 다만 이들은 한국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을 찾거나, 북한에 대한 호기심으로 북한대사관을 찾은 것에 불과했다. 특히 당대 유학생들은 북한대사관을 '무료로 밥을 주는 데다가 호의를 베푸는 일종의 마실터'로 보고 자주 왕래하곤 했다. 조직적인 간첩 활동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사건은 조직적인 대북 활동으로 부풀려졌다. 수사 과정에서 강제 연행이나 고문도 만연했다. 수사를 받았던 천상병은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해 생전에 '유고시집'을 발표할 정도로 건강이 쇠했다. 결국 프랑스 정부와 서독은 "영토주권의 침해다"며 강하게 반발하며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등 외교 문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종심까지 거쳤지만 간첩죄가 인정되지 않거나 감형됐다. 이 가운데 '인권 유린'을 이유로 전 세계적인 비판까지 받으면서, 더 이상 관계자들을 묶어둘 수 없었다. 결국 1970년 12월 관계자들은 모두 석방됐다.
◆ 동백림에 묻힌 거리의 시위
일련의 동백림 사건은 박 대통령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6월 8일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전체 의석이 73.7%를 차지하자, 신민당과 학생들이 대대적인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나섰다. 결국 박 대통령은 16일 부정선거를 인정하며, 7개 지구 당선자를 당에서 제명했지만 시위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가운데 저명한 예술가들이 간첩으로 호명되자, 사회의 관심도가 동백림 사건에 쏠리며 시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지식인 역시 동료들이 대거 잡혀가는 것을 보고 섣불리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3선개헌안을 통과시키며 장기 집권의 토대를 닦았다.
시간은 흘러 2006년,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동백림 사건과 관련된 발표를 내놓는다. 진실위는 "단순 대북접촉 및 동조행위까지도 국가보안법과 형법상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며 "대학생들의 규탄시위를 약화하고자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무리하게 수사했다"고 발표했다.
동백림 사건은 국가 권력이 얼마나 손쉽게 공포를 만들고, 사건을 키워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냉전과 반공의 시대 속에서 평범한 접촉과 왕래도 죄가 됐고, 예술과 학문마저 의심받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삶은 무너졌고, 일부는 평생 후유증 속에 살아야 했다. 뒤늦게 진실 규명과 사과 권고가 이뤄졌지만, 이미 남겨진 상처까지 지워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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