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한 사람의 피고인이 있다. 스물한 살의 남성으로 무직, 가정주택에 침입하여 그 집 모녀를 식칼로 찔러 죽였다. 아이는 다섯 살이었고, 범행 당시 남자는 일종의 신경쇠약 상태였다. 본인은 유죄를 인정하고 지금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
(사례 A) 혼자된 그 집 아버지는 눈물로 배심원에게 호소한다. "이렇게 잔인한 범죄는 없습니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부디 범인을 사형시켜 주십시오. 저런 인간은 세상을 살 가치가 없습니다."
(사례 B) 혼자된 그 집 아버지는 눈물로 배심원에게 호소한다. "이렇게 잔인한 범죄는 없습니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부디 범인을 사형시키지는 말아 주십시오. 더는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각각의 사례에 어떤 판결을 선택하겠습니까?만약 A와 B의 경우에 다른 판결을 선택한다면 형벌의 윤리성이며 필연성, 그런 것은 어디 있을지, 이건 몹시 어려운 문제이지 않습니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묻는다.'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하였고,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을 피고인의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는 문구는 형사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관용어구이다. 반면 피해자가 진정으로 피고인을 용서하고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는 경우라면 이를 양형에 있어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지적장애가 의심되는 피해자, '가스라이팅' 정황이 농후한 피해자가 처벌불원서, 탄원서를 제출하는 경우이다.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는 법정대리인에 의해 강요된 탄원서 제출이 의심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엄한 부모, 방임 부모 밑에서 미성년자인 피해자는 피고인이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며 이제까지의 삶에서 자신을 가장 잘 대해 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속된 피고인을 찾아가고 탄원서까지 제출한다. 그러한 피해자의 탄원서야말로 피해자의 취약성에 대한 명백한 징표이고, 그런 피해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므로 피고인에 대하여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변호인으로 개진해보지만, 지적장애가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의 탄원서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하는 법정을 현실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피해자의 탄원서는 법원으로서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는 피고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상이다. 그렇다면 피고인 지인들의 탄원서는 어떨까? 이를 유리한 정상으로 기재한 판결문도 현실에서는 드물지 않다. 그래서인지 다다익선이라는 믿음으로 수십 장의 탄원서, 수백 명의 탄원인 명부를 들고 와서 꼭 제출해 달라고 내미는 피고인의 가족도 적지 않다.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의 경우 어린이집 선생님부터 온갖 소위 이모님들의 탄원서가 제출되기도 하는데, 그 내용인즉 자신이 이제껏 보아온 그 아이는 착하고 바른 아이였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린 여학생에게 반강제로 술을 먹이고 성폭력을 저지르고 동영상 촬영까지 하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런 탄원서를 작성하였는지 탄원서 내용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런 열성 부모를 둔 소년범의 경우 반성문도 열심히 적어서 내는데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부모님께 크나큰 심려를 끼쳐 드려 너무나 죄송하다는 것이 반성의 주된 내용인 경우가 많다.
나름의 슬기로운 감방 생활로 생각해서였는지 1일 1 반성문을 빼곡하게 써서는 제출해달라던 피고인이 있었다. 본인은 정성 들여 쓴 것이겠지만 악필에다 해독 수준의 결과물은 그냥 반성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판사님이 다 읽어 줄까요?'를 물었지만, 나의 대답은 다 읽지만 그러면 오히려 해로울 것이다였다.
반성문, 탄원서를 대신 써준다는 광고 문구도 많고, 그런 대필 고수가 있는 감방이 있다는 얘기도 풍문으로는 들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그간 접한 반성문, 피고인 지인의 탄원서 중 마음을 움직여 이 정도면 분명 피고인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생각되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물론 너는 변호인이 아니냐 반문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변호인으로서 그런 판결문은 받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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