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조카가 휴대폰 화면에 푹 빠져 있다. 상대를 번쩍 들어 올리는 리프팅 기술에 환호하고, 공중에서 펼쳐지는 묘기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링, 가면, 챔피언 벨트까지. 영락없는 프로레슬링이다. 초딩이 뭔 레슬링이냐며 휴대폰을 뺏으려들자 조카가 소리친다. "요즘 이거 안 보는 친구들 없어!"
부모 세대는 어리둥절하다. "우리 때 이왕표, 박치기왕 나오던 그 레슬링 맞아?" 아이에게 여러번 되묻기도 한다. '한물간 스포츠'로 여겨지던 프로레슬링이 어떻게 어린이들 사이에 급속도로 인기를 끄는 것일까. '뽀로로' '티니핑'에 이어 새로운 '초통령'으로 떠오른 PWS. 그 인기의 이유를 들여다봤다.
◆ PWS 매진행렬 '이례적 성과'
오는 9일 열리는 'PWS 레슬네이션2'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약 3천 석 규모의 체육관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2천700석 이상이 이미 판매됐다. 국내 프로레슬링이 여전히 일부 마니아 문화로 여겨지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성과다.
PWS는 2018년 설립된 국내 신생 프로레슬링 단체다. WWE식 캐릭터 중심 연출을 도입하며 꾸준히 성장해왔다. 2023년까지만 해도 소규모 공연장에서 70~100명의 관객을 모으던 수준이었지만, 2024년 2천100명, 2025년 8천900명으로 관객이 급증했다.
이희정 PWS 총괄이사(57)는 "작년 최대 유료 관객 3천명을 기록했다. WWE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라며 "WWE의 타지리, 리카르도 로드리게즈, 멜리나, 돌프 지글러 또한 주목해야 하는 단체로 꼽기도 했다"고 말했다.
◆ 초통령 비결은 뭘까
이러한 인기의 중심에는 어린이 관람층이 있다. 실제 관객 대부분은 6~12세 아이들과 부모들이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열광할까. 답은 단순하다. 쉽기 때문이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선'과 '악'이 명확히 나뉜다. 복잡한 서사가 필요 없다. 누굴 응원해야 할지,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아이들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단순함이 몰입을 만든다. 김건우(12) 군은 "악당을 물리치는 레슬러들의 모습이 통쾌하다"며 "모두 같이 악당에게 손가락질 하며 야유할때 재밌다"고 말했다.
의상과 색깔도 의도적으로 단순화했다. 진개성은 초록색, 시호는 빨간색, 최영준은 파란색 등 캐릭터마다 색을 달리해 어린이들이 한눈에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총괄 이사는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색깔과 캐릭터를 명확히 나눴다"고 설명했다.
과격함도 줄였다. 2024년부터는 위험한 기술과 자극적인 연출을 대폭 덜어냈다. 이 총괄이사는 이를 두고 "강한 자극은 금방 질린다. 특히 아이들은 더 그렇다"고 말했다. 대신 응원 문화는 더 커졌다. 악역이 등장하면 야유가 쏟아지고, 영웅 캐릭터가 나오면 "이겨라!"라는 함성이 터진다. 조용히 관람하는 공연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무대에 가깝다.
◆ 단순한 재미 넘어 '투영의 대상'
단순해서 빠져들지만, 그 안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단순한 서사는 아이들에게 '재미'를 넘어선 의미를 만든다. 이들은 경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투영한다. 이은수(13) 양은 "반칙하는 악당 선수를 물리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약한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른바 '권선징악' 구조의 스토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평가다. 학부모 김아람(40) 씨는 "경기를 본 아이가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며 "백 번 말하는 것보다 경기 한 번 보고 오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투영'은 때로 현실의 어려움을 버티는 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PWS 측이 공개한 한 사연도 이를 보여준다. 백혈병 투병 중이던 한 아이가 힘든 치료 과정 속에서도 PWS 경기를 보며 웃음을 되찾고, 그 안에서 힘과 희망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해당 자녀의 아버지는 "힘든 치료 중에도 PWS를 볼 때만큼은 아이가 웃었다"며 "그 시간만큼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영웅'은 단순한 연출을 넘어 하나의 세계로 작동된다. '악당'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아이들은 '영웅'을 보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때로, 현실을 버티는 힘이 된다.
◆ 부모와의 대화 창구
부모들의 반응도 예상 밖이다. 한때 '과격하고 위험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던 프로레슬링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실제 공연은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참여형 콘텐츠에 가깝기 때문이다. 학부모 이민건(50) 씨는 "처음엔 너무 과격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맘에 혼도 많이 냈다"며 "하지만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건전하고 재밌어서 안심했다"고 말했다.
게임에 빠져 있던 아이가, 집에서 아빠와 레슬링 흉내를 내며 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생기고, 함께 노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다만 주의도 필요하다. PWS 측은 "선수들의 기술은 오랜 훈련의 결과"라며 "가정에서 무리하게 따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당부했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유튜브를 통해서만 경기를 접할 수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공식적인 중계 채널이나 플랫폼 확대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이 총괄이사는 "현재 일부 방송사와 프로그램 편성을 논의 중이며, OTT 플랫폼과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유초등생 부모들, 아이와 친해지려면 알고 가자!
PWS 주요 캐릭터 한눈에 보기
진개성 : "개성만점!"을 외치는 정의의 히어로. 초록색 캐릭터
시호 : "시호떡!" "10센치!"… 얍삽하고 얄미운 악당. 빨간색
예니 : "애생소녀" "웅디강디꿍야"… 밝고 귀여운 발랄 캐릭터. 분홍색
포이즌로즈 : '독장미'라 불리는 위민스 챔피언. 강렬한 블랙 콘셉트
이랑 : "산산조각!"을 외치는 단순·직진형 악당. 비주얼도 강점
하다온 : '상남자' 콘셉트의 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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