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아침, 나는 한 요양병원을 찾았다. 지인인 의사 선생님의 초대로 작은 음악회를 열게 된 것이다. 병원 공연은 오랜만이었다. 오늘은 또 음악이 어떤 마음들에 닿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바이올린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작은 강당에는 환자들과 의료진까지 서른 명 남짓 모여 있었다. 클래식과 영화음악, 그리고 한국 가곡들을 준비했다. 따뜻하고 익숙한 곡들이었다.
그런데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객석의 표정들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무겁고 굳어 있었다.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 분들도 있었고,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몸이 불편하시거나 공연이 낯설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음악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굳어 있던 얼굴이 풀리고, 조용히 박자를 맞추는 손이 보였다. 어떤 분은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고, 어떤 분은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곡이 끝났을 때는 한 어르신이 크게 "브라보!"를 외쳤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다.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어머니는 공연을 보시다 눈물을 흘리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공간 안에 따뜻한 변화가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의사 선생님과 식사를 하며 그날 아침 있었던 일을 듣게 되었다. 새벽에 한 환자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공연 전 병동에 흐르던 무거운 공기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음악회 덕분에 환자분들의 표정이 정말 많이 밝아졌다고,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평소에는 딸과 함께 공연장을 찾는 삶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오늘 음악회를 직접 경험하고 나니 언젠가는 딸의 손을 잡고 공연장에 가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함께 음악을 듣고 같은 감동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흔히 문화를 가장 화려한 곳에서 찾는다. 좋은 공연장, 세련된 공간, 유명한 무대들. 물론 그것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날 요양병원에서 연주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문화의 향기가 먼저 닿아야 하는 곳은 오히려 이런 곳들이 아닐까 하고. 병원, 돌봄센터, 자립시설, 호스피스 같은 곳들. 외로움과 지침이 오래 머무는 공간들 말이다.
예술은 병을 낫게 하지도, 죽음을 막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어떤 음악은 사람을 다시 웃게 만들고, 잠시라도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돌려준다. 그날 요양병원에서 내가 본 것은 단순한 공연의 성공이 아니었다. 음악을 통해 다시 환하게 살아나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마지막 브라보의 울림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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